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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9. 담을 넘은 자와 정면으로 마주하다

창 밖을 내다본 나는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by 줄리아

에이미 덕분에 우리는 며칠 더 LA 다운타운의 호텔에서 갇혀 지내고 드디어 팔라조에 입성했다. 무빙데이에 어찌나 기분이 좋고 행복한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의 아파트는 햇볕도 안 드는 1층에, 소방서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거의 1시간에 한 번씩은 귀가 찢어질 정도로 앵앵~하는 소리가 들렸다. 햇볕이 들던 안 들던 상관없었다. 소방차가 출동하는 소리도 상관없었다. 내가 후보로 둔 어떠한 아파트보다도 더 고급스러웠기 때문에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한국에 있는 우리 엄마, 아빠가 떠올랐다. 부모님도 여기 오시면 좋아하실 텐데..라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에 사진이라도 찍어서 부모님에게 보내고자 아파트 여기저기를 찍고, 우리의 작은 테라스 역시 사진을 찍어 보내려고 창밖을 내다봤다.


창 밖을 내다본 나는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너무 빠른 시간 안에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담을 어떤 청년이 넘어서 우리 집 테라스 앞의 정원에 서있었다. 자주 담을 넘어 다녔는지, 아주 날다람쥐처럼 사뿐히 넘어 나를 봤다.


그 사람도 당황을 하였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너무 놀래서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방 안을 둘러보던 남편이 거실에 나오자 사태를 파악한 청년이 빠르게 도망을 갔다.


그 높은 담을 어떻게 저렇게 날다람쥐처럼 넘을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우리 집 담의 반대편에 가보니, 우리 집 바로 앞의 담벼락은 다른 아파트와 이어져 있었던 구조로, 그 반대편 아파트 담벼락에 쓰레기통이 세워져 있어 쓰레기통만 밟고 올라서면 담을 사뿐히 넘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젊은 날다람쥐 남자분은 뭐를 훔치려고 담을 넘은 건지, 그냥 심심해서 담은 넘은 건지..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후부터는 너무도 행복하던 나의 기분은 다시금 이곳도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패닉 상태로 이어졌다. 바로 아파트 오피스를 들어가서, 어떤 사람이 지금 담을 넘어서 도망갔다. 이거 조치를 취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에이미한테 항의할 때에 이어 평소에는 영어도 못하고, 자신감도 없어서 스몰토크 하기 싫어 여기저기 도망치던 내가 이렇게 까지 영어로 조리 있게 말을 잘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팔라조는 대응이 빠른 편이었다. 문 구석구석에 담 넘어 다니지 말라는 문구를 붙여 놨고, 그 문구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 이후에는 담을 넘어서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라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여 나는 거의 병적으로 테라스의 문을 감갔는지 확인했다.


IMG_9406 3.HEIC 내가 밤낮으로 잠겨져 있는지를 확인한 테라스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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