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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읽는 내 인생 이야기

파리, 항공, 인생

by 미스터 엔지니어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삼십 년 전, 젊은 시절에 마침내 국내의 한 항공사에 항공정비사로 취업하게 되었다. 영어로 기본 회화조차 버거웠던 내가 떠난 첫 배낭여행은, 삶 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힘든 회사 생활을 버텨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번 여행은 특별하다. 각자 다른 곳에서 살아가던 가족이 파리에 모이기로 한 것이다. 혼자 지내고 있는 큰아들, 그리고 호주에 살고 있는 아내와 막내까지, 모두 함께 파리를 여행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로 바쁜 자식들도 이 주간의 휴가를 내어 동참했다.

아내와 막내는 하루 먼저 호주에서 출발해, 큰아들이 있는 두바이에서 합류한 뒤 파리로 향했다. 나는 회사 교육을 마치고, 마지막 날 저녁 비행기를 타고 15시간을 비행해 두바이에 도착했고, 두 시간의 경유 후 다시 8시간을 날아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세 번의 파리 여행
첫 번째 방문은 1996년, 이십 대 중반이었다. 당시 회사의 스탠바이 할인 이코노미 항공권을 이용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처음으로 파리에 도착했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도미토리에 머물며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과 함께 지냈고, 대중교통을 제대로 알지 못해 헤매기도 했다. 소매치기에게 지갑을 도둑맞을 뻔했고, 샹젤리제 거리의 식당에서 물 한 잔을 시켰다가 6천 원을 내기도 했다. 이후 수돗물을 마셨다가 배탈이 나 며칠간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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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문은, 호주로 이직하기 몇 달 전 온 가족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막내가 열 살이었고, 또다시 할인 항공권을 이용해 파리에 도착했다. 도착 이틀 후 파리 철도 노조의 파업으로 외곽 여행은 취소하고, 대신 파리 시내의 여러 박물관을 아이들과 둘러보았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호스텔에서 머물며 직접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파리 방문이다.
예전에 근무했던 항공사 덕분에 가족 모두 비즈니스석 좌석을 제공받아 편안한 비행을 했다. 멜버른에서 두바이를 거쳐 파리까지 25시간에 걸친 여정이었지만,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엔 큰아들이 마련해 준 파리 중심가의 호텔, 그것도 로열 스위트룸에서 열흘간 머무르고 있다. 창밖으로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에펠탑이 보인다.

내 인생에서 파리는 방문할 때마다 큰 변화를 안겨준 도시였다.


도미토리에서 시작된 첫 여행은 시간이 지나 가족과 함께하는 로열 스위트룸으로 이어졌다. 혼자였던 여행자는 가족을 이뤘고,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이제는 함께 여행을 한다. 삼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의 인생도 그렇게 조금씩 계단을 올라왔다. 화려하지 않지만, 충분히 아름답다. 파리는 내 삶의 작은 이정표였다.


오늘은 봄비가 내리는 파리에서, 큰아들의 생일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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