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직장, 항공엔지니어
가끔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오후에,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날도 그랬다.
점심을 먹고 살짝 졸음이 몰려와 잠시 눈을 붙였다.
눈을 뜨니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아, 인사부 매니저 전화였나?’
멜버른 출장 일정을 조율하려고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런데 전화번호가 낯설었다.
국가번호를 보니 아랍에미리트.
혹시 두바이에 있는 내 친구일까 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다.
"헬로, 마수드라고 합니다."
상대방은 중동 억양이 섞인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아부다비에 살고 있고, 내 두바이 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자신이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싶다는 이야기.
나는 예의상 그의 말을 들었고, 경력과 자격증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대화는 점점 이상해졌다.
연봉은 얼마나 되냐, 복지는 어떠냐, 근무 조건은 어떤가 등등…
초면치고는 너무 많은 걸 물었다.
그 순간 약간의 불편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전화를 끊고, 두바이에 있는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연락을 해봤다.
“네 친구 마수드한테서 전화 왔어.”
"진, 그 친구... 너무 계산적인 사람이야."
친구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말했다.
“오퍼 받아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 안 갈 수도 있어. 그냥 조심해.”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멜버른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점심을 먹다 무심코 마수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더욱 놀라웠다.
“마수드? 내가 아주 잘 알지. 그 사람... 고약한 친구야. 아부다비에서 소문 자자했어.”
한 사람의 과거가, 지구 반대편까지 이렇게 퍼져 있을 줄은 몰랐다.
행동은 기록된다. 어디에선가, 누군가에게.
이직을 고민하며 누군가의 추천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랄 때,
우리가 기대는 건 단순한 스펙이나 이력서가 아니다.
그 사람에 대한 기억, 그리고 평판이다.
말은 천 리를 가고, 행동은 수만 리를 간다.
마수드의 행동은 바람을 타고 국경을 넘었고, 그가 기대하던 기회 앞에서 결국 스스로를 막았다.
작게 남긴 흔적이, 크게 돌아온다
이 이야기를 통해 한 가지를 다시 깨달았다.
세상이 좁아진 지금, 어느 곳에서든 한 사람의 태도는 생각보다 멀리 퍼진다.
눈앞의 이익만 좇기보다, 지금 내가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를 한 번쯤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
왜냐면, 그 이름은 바람을 타고 –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