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인연, 항공엔지니어
공항에서의 하루하루는 마치 작은 세계여행 같았다. 매일 수많은 비행기가 이착륙하고, 그 안에는 저마다 다른 언어와 표정을 지닌 사람들이 오간다. 나는 그들을 맞이하는 일을 하며, 자연스레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외항사를 담당하던 시절, 다양한 국적의 조종사와 엔지니어, 승무원들과 일하다 보니, 그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들었다. 그래서 하나씩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브라질 항공기를 맡으면서는 포르투갈어 인사를 익혔고, 일본 조종사에게는 일본어의 어감을 배웠다. 중국, 태국, 러시아… 그렇게 시간 속에서 나의 언어는 하나둘 늘어갔다.
어느새 열 개 나라의 말로 인사를 건네고, 간단한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언어는 놀랍도록 따뜻한 도구였다. 외국에서 자신의 말을 건네는 이방인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눈빛부터 달라졌다. 그 순간 그들과 나 사이엔 벽이 아닌 다리가 생겼다.
그렇게 쌓인 인연들 중, 유난히 따뜻했던 사람이 있었다. 필리핀 항공의 한 캡틴. 비행 스케줄이 겹칠 때마다 웃으며 안부를 묻던 그는 언젠가 꼭 필리핀으로 골프여행을 오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인사치레로 흘러갈 법한 말이었지만, 결국 나는 그의 진심을 따라 그 땅을 밟게 되었다.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던 날,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든 운전기사가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비행이 끝나고 또 다른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캡틴의 집에 초대받았다. 3층짜리 대저택, 고요한 마당 끝에는 골프 연습장이 펼쳐져 있었고, 대나무로 꾸민 파티 공간에선 밤이 깊도록 웃음이 울려 퍼졌다. 고급 요리와 음악, 그리고 따뜻한 환대 속에서 나는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여행 내내 우리는 매일 아침 호텔 앞에서 픽업을 받았고, 하루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계산을 하려 영수증을 챙기려던 내 손에, 캡틴은 장난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손님이야?”
그날의 식사비는 당시 기준으로 가정부 두 명의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손님 대접을 고집했고, 그 배려는 단순한 식사 이상의 감동으로 남았다.
귀국 비행기 안, 창밖으로 멀어지는 마닐라의 불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어는 단지 소통의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을 열게 하고, 낯선 이와의 거리를 단숨에 줄이는 힘이었다.
그리고 내가 배운 언어들은 결국 사람의 언어였다. 따뜻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용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 준 우정의 말들.
그 여행은 끝났지만, 마음속엔 지금도 따뜻한 필리핀의 바람과 웃음이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