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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엔지니어 Jul 28. 2021

공짜 미국행 비행기 티켓

항공 엔지니어, 인연, DC-10

국내 항공사에서 근무하던 젊은 시절에 나는 참 용감했다. 안 되는 영어 회화를 익히기 위해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외국인은 나의 영어 회화 연습 상대였다.


외국 항공기를 검열 나온 외국 교통부의 검사관, 공항에 방금 도착해 길을 찾는 외국인, 그리고 공항 램프에 돌아다니는 모든 외국인을 만나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유가 없으면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영어로 말을 걸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배낭을 메고 해외로 혼자서 여행을 나갔다. 무조건 배낭여행자 숙소인 배낭여행자 호스텔을 찾아 하루 숙박비가 10불이 안 되는 도미토리 룸으로 예약을 하고 외국인 친구들을 만났다.
그렇게 하면 외국에서 온 배낭여행자들을 반드시 만나게 되고 그들과 영어로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안 되는 영어 회화를 하면서 그들에게 배운 표현들을 연습하고 이 친구한테 들은 표현들을 다음에 만나는 친구에게 연습하고 다녔다.

그리고 대화 주제를 만들기 위해 국내에서 당시에 유명한 ‘맹구 시리즈’ 그리고 “최불암 시리즈’ 등을 영어로 바꾸어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보디랭귀지 등을 섞어가며 표현하려 노력했다.

몇 년이 흐르고 회사에서 영어 회화를 좀 한다는 이유로 외항사 지원팀에 배속이 되었다. 이건 더욱더 내겐 기회로 작용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우리가 핸들링하고 있는 두 개의 미국계 화물 항공사와 브라질 항공, 일본의 한 항공사, 몇 개의 중국계 항공사와 호주의 모 항공사를 지원하고 있었다.

항공사를 지원할 때 대부분이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하므로 더더욱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늘어만 갔다. 그런데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과 호주 항공사를 제외하고는 영어를 사용해도 상대편 항공 엔지니어는 영어가 능통하지 않아 그 나라 말을 따로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브라질의 언어인 포르투갈어를 엔지니어와 조종사, 승무원을 통해 익히다 보니 얼마 안 가서 그들의 언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 회사가 핸들링하는 항공사의 수가 늘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언어의 종류가 10개국이 넘었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화물기 회사에서 파견을 나온 미국인 정비 지점장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 회사를 핸들링하는 날이면 항공기가 도착해 나가는 시간이 6시간 이상이 되기도 했다. 도착한 항공기 핸들링을 마치고 나면 대기하는 시간에 그 미국인 지점장과 같이 다니며 점심도 같이 먹고 그 친구와 일상적인 가족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 지점장은 예전에 한국에 미군 정비사로 오산에 파견을 나와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의 미국 화물기 회사의 전자 정비사로 취업이 되어 한국에 지점장으로 파견을 나와 있었다.

매일 그렇게 같이 붙어 다니면서 내 마음속의 이야기도 털어놓고 휴일이 되면 밖에서 만나 한국 음식도 먹으러 다니곤 했다. 이 친구가 어느 날 미국에 휴가를 가는 데 미국에서 필요한 게 없냐고 사다 주겠다고 했다.



곰곰이 고민을 하다가 미국의 FAA 정비사 시험에 필요한 문제집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진혁! FAA 자격증을 따려고? 내가 좋은 정보 하나 알려 줄까?”

“그래? 알려주면 고맙지.”

“이번에 우리 비행 편이 늘면서 한국에 현지 정비사를 채용하려고 계획하고 있어. 만일 네가 FAA 자격증을 합격하면 내가 너를 우리 회사 정비사로 고용을 할게.”

그리고 얼마 후에 미국에 다녀온 지점장이 내게 FAA 시험 문제집 세 권을 가져왔다. 그 친구에게 책값을 바로 지불하려고 했다. 그러자 지점장은 책값은 안 줘도 된다며 나중에 시험에 합격하고 돌아와서 맛있는 저녁이나 사라고 사양을 했다.

“진혁! 그런데 미국은 어떻게 갈 거야? 항공권은 샀어?”

“아니. 이제 알아봐야지.”
“그럼 우리 비행기 타고 갔다 와. 내가 회사에 요청해서 우리 승무원 명단에 올려 줄게.”

그렇게 나는 김포공항에서 미국인 화물기 조종사들과 함께 DC-10 화물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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