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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엔지니어 Sep 28. 2021

빙하에서 길을 잃다.

빙하, 알래스카 , 해외여행



나는 알래스카를 좋아한다. 나의 인생을 바꾼 곳이기도 하고 나의 가장 친한 지인이 살던 곳이기도 해서 호주로 이주하기 전에는 매년 시간을 내서 앵커리지를 방문하곤 했다.

호주로 이주한 지 몇 년이 흐르고 휴가를 내서 가족들과 함께 36시간을 날아갔다. 로스앤젤레스, 덴버, 그리고 시애틀을 거쳐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예약해 논 렌터카를 찾아 호텔로  체크인하고 우선 지인 가족을 만났다. 85세가 되신 지인은 병세가 약해져서 이제는 아내분의 도움을 받고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셨다.
동네 친구들에게 본인을 보러 멀리 호주에서 방문했다고 자랑을 하셨다.

그렇게 며칠을 지인 가족과 함께 보냈다.  앵커리지 방문이 처음인 아이들에게 빙하의 알래스카를 구경하러 앵커리지 시내를 벗어나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렸다.

초 가을이지만 벌써 높은 산 봉우리에 눈이 내려서 하얗게 보였다. 앵커리지 지역의 빙하지역은 대부분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있다.

빙하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 공원 입구에 마련된 안내소에 들렸다. 우선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고 안내원이 내민 서류를 받았다.
자세히 읽어보니 빙하지역에서 사고 발생 시 모두 개인 책임이며 안전하게 방문하겠다는 서약서였다. 서류에 사인을 하고 공원 입구에서 몇 분 더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우선 아내와 애들에게 준비해온 겨울 점퍼를 입히고 장갑을 주었다.

앞에 펼쳐진 빙하는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검은 석탄가루 같은 검은색의 언덕과 그리 높지 않은 산 같은 빙하 산이 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 빙하가 갈라져 연한 녹색의 빙하 얼음이 중간중간 눈에 들어왔다.  



우선 갈라져 녹아 내라고 있는 빙하를 배경으로 커다란 아치 모양의 빙하 더미 옆에 두 아이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에 커다란 빙하 얼음 덩어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큰일 날 뻔했다.



완만한 빙하 언덕을 올라 검은색 얼음 능선을 따라 빙하지역으로 들어갔다. 이제 차도 안 보이고 오직 얼음 산과 빙하가 갈라진 크레바스 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좀 더 빙하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니다가 문득 길을 잃은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얼른 돌아가야겠다. 이러다 해라도 지면 빙하에 갇히고 만다.'

서둘러 왔던 길을 돌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걷다가 보니 아까 왔던 곳에 다시 와 있었다.  


잠깐 패닉이 왔다. 이대로 있다간 큰일이다. 그러나 가족이 걱정할까 봐 내색을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얼음 표면이 녹아서 미끄러운 부분을 밟고 넘어지며 얼음에 약간 손을 베었다. 앞으로 가면 커다란 얼음 틈의 크레바스가 뒤에는 날카로운 얼음이 덮여있는 빙하가 끊임없이 둘러쳐 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에 빠져버렸다.

조심조심하면서 그렇게 두 시간을 헤매고 나서 익숙한 언덕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저 멀리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해가 지기 전까지 빙하를 탈출하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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