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기(2)

행복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by 찰나의생각

어린 시절 우리 집 구성원은 엄마, 아빠, 할머니, 나, 동생 이렇게 다섯이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할머니가 나와 동생을 키우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이나 할머니 말에 의하면 나는 말을 조금 늦게 시작했다고 한다. TV 보는 걸 그렇게 좋아했는데, 특히 광고를 좋아해서 부모님이 출근할 때마다 가지 말라고 울곤 하면 녹화해 둔 TV광고를 보여줬다고 한다. 그러면 TV에서 눈을 못 떼고 누가 나가는지도 몰랐다고. 어쩌면 어릴 때 영상매체에 과도하게 노출이 되어서 말을 배우는 게 늦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8살 즈음부터는 확실히 TV로 만화영화를 엄청나게 봤던 기억이 난다. 로봇이 나온다 하면 바이오맨, 후레쉬맨, 파워레인저 같은 전대물부터 다간, 선가드, 골드런 등등 다 챙겨봤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20분 남짓 하는 로봇 만화를 보며 꿈과 희망에 부풀었고, 만화를 보던 시간만큼은 나는 주인공들과 같이 만화 속에서 악당들과 맞서 싸웠다.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전 날 봤던 만화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하던 때가 지나가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만화를 보는 친구들이 점차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나는 속으로는 여전히 만화 보는 게 좋았지만 겉으로 티를 내면 나를 유치하다고 무리에 끼워주지 않을 것 같아서 만화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척을 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학교에서 하는 CA시간에 친구를 따라 우연히 프라모델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건담(GUNDAM)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애니메이션 정주행부터 건담 프라모델 조립까지 푹 빠지게 되었다. 중학교 언젠가 아빠가 특별히 사준 MG 스트라이크프리덤건담을 밤새 완성하고 뿌듯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요즘도 건프라를 가끔 취미로 하기도 하고 유튜브를 통해 최신 소식을 확인하기도 하는 걸 보면 이때의 우연한 경험은 나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친구를 따라 프라모델부에 들어갈 결심을 하기까지 대단한 고민을 한 게 아니었는데 그 결과는 꽤나 오랜 시간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로봇이나 만화를 좋아하던 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의 10대는 공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8살부터 구몬 수학, 한문, 국어 세 과목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매일 아침 등교 전에 해야 했고, 9살 즈음부터는 영어 학원, 수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공부뿐만 아니라 수영, 태권도, 피아노도 배웠는데, 물론 요즘 애들은 더 바쁘다고 하지만 나도 참 그 어린 나이에 열심히도 살았다. 당연히 공부는 하기 싫은 것이었고, 학교나 학원에서 보는 시험이 정말 부담스럽고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해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시험을 못 보거나 성실하지 못하면 엄마가 화를 냈고, 나는 엄마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게 무섭고 싫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인가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60점 받았을 때 엄마가 화를 내며 집을 나가라고 해서 울면서 집을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때 내 일상은 '학습지, 등교, 하교, 학원, 자기 전 과목 별 예/복습'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공부를 해도 학교 시험 성적이 썩 좋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동생은 적당히 공부해도 시험을 잘 봐서 부모님이 기대도 많이 하셨는데, 나는 열심히 해도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하니 어느 날에는 아빠가 '단소 잘 부니까 국악고 가는 게 어떠냐'라고 농담처럼 말을 했다. 물론 나는 단소를 그렇게 잘 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성실하게 수행평가를 준비했을 뿐이다. 아직도 이 날이 기억나는 거 보면 어린 마음에 아빠가 무심코 던진 농담이 상처였나 보다.

중학교 입학하고부터는 대형 특목고 전문 학원에 다녔다. 이 학원을 중학교 3년 내내 다녔는데, 중학교 때를 돌이켜보면 학교보다 학원에서의 추억이 더 많이 생각날 정도로 학원을 정말 치열하게 다녔다. 이 학원은 내가 살던 지역에 여러 캠퍼스를 둘만큼 규모가 컸다. 캠퍼스라고 부를 정도로 그 주변의 여러 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8층 정도의 건물의 대형 학원이었는데, 대부분은 외고 입학을 목적으로 공부하였다. 나 역시 중학교 2학년까지는 외고반에서 성실함을 무기로 열심히 성적을 올렸고, 학원 내에서 꽤 상위권 반에 소속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외고를 목표로 하다 보니 영어 관련 수업이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오히려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수학 성적이 특별히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좀 있었는데, 나는 어떻게 풀지 몰라 쩔쩔매는 어려운 문제를 그들은 참 쉽게 푸는 모습을 보며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론 이 친구들은 머릿속에서 어떤 사고 과정으로 저런 풀이법을 생각해 낼 수 있는지 궁금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수학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중3 올라가던 겨울 방학에 학원에서 소수의 상산고 대비반 인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상산고는 무려 '수학의 정석'의 저자가 이사장님으로 계신 고등학교로, 수학 실력이 특히 좋은 학생들이 가는 고등학교로 알려져 있었다. 상산고 대비반에 지원하려면 수학 시험을 쳐야 했는데, 수학에 관심이 있던 나는 별 기대 없이 시험을 봤고, 덜컥 통과를 해버리는 바람에 얼떨결에 상산고 대비반에서 중3 시절을 보냈다.

상산고 대비반에서의 1년은 어쩌면 내 인생의 첫 번째 체크포인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상산고를 가지 못했지만, 이때 수학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새로 익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학 실력을 크게 쌓을 수 있었다. 학교 점심시간에도 밥 먹으면서 학원에서 내준 수학 문제 제를 풀었고 새벽까지 학원에서 자습을 하곤 했다. 이렇게까지 공부했는데 입학시험에 떨어진 게 너무 분하기도 했고, 인생에서 처음 겪은 불합격이다 보니 낙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학은 계속 재미있게 느껴졌고, 일반 고등학교를 가더라도 앞으로 수학만큼은 어디 가서 잘한다 소리 들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16살까지의 타임라인을 정리해 보았다. 나는 TV 보는 것을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로봇 만화를 좋아했으며, 친구를 따라 우연히 프라모델부에 들어가서 건담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건프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가정의 평안을 위해 억지로 공부를 하다가 친구들을 보며 수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별 기대 없이 지원한 상산고 대비반에 들어가서 수학에 파묻혀 1년을 보내며 큰 성장을 이루었다. 로봇에서 시작해서 프라모델까지 이어진 경험은 순수하게 재미만으로 구성된 것인 반면, 수학에 대한 관심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이 둘은 분명 차이가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프라모델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건담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학원에서 상산고 대비반 시험을 보지 않았다면 수학을 그저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 정도로만 생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내 내면은 아직 내가 분명히 정의할 수 없는 여러 본질적인 것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중 만화, 로봇과 같은 본질은 겉으로 드러나기 쉬운 것이고, 수학은 저 깊이 숨어서 겉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본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숨어있는 모든 본질을 파악하기란 어쩌면 평생에 걸쳐서도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이루는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 알 수 있을 것이므로, 나의 본질을 알아가는 노력은 중요하다. 나의 중학생까지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 나의 본질에 대한 단서는 뜻밖의 상황에서 우연히 찾아온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데, 그것을 찾기 위한 계획을 어떻게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에피소드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너무 깊이 고민하지 말고 나 자신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노출시키다 보면 거기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나 혼자 평소라면 하지 않을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결심으로 펼쳐질 미래에서 어쩌면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혼자 결심하기 어렵다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강제로 나를 새로운 곳에 떨어트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