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기도 즐겁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면 그 자체로 멋진 것
많은 학부 3학년 학생이 그러하듯 나의 그 시절도 여러모로 바빴던 시기였다. 학업 면에서도 전공과목 내용이 깊어지고 다양해지면서 이전만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고, 그 해에 학교에 자연과학부가 신설되면서 부전공을 전기전자에서 수학과로 옮겼는데 생소한 개념들을 배울게 많아서 공부하기가 어려웠다.
수학과에서 배운 내용은 내가 십 대 때 상상하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수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추상적인 개념을 정의하고 그 정의들이 모여 정리(Theorem)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증명)을 배웠는데, 수능을 위한 수학만 배운 나로서는 낯설고 어려웠다. 해석학, 위상수학, 현대대수학 같은 과목들은 고학년 때 배울 깊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을 다지는 과정이라고 느꼈는데, 생소하고 추상적인데 뭔가 내용이 재밌지는 않은 그런 강의를 듣고 있으니 집중을 오래 하기 힘들었다. 경험상 수학과의 강의 구성 중 99%는 증명이라고 할 수 있고 시험도 증명하라는 문제만 나왔던 것 같은데, 확실히 내 적성은 아니었다. 강의는 사실상 Definition-Theorem-Proof-Lemma-Proof-Corollary-Proof-Theorem-Proof-... 의 무한 반복인데, 시험을 위해 모든 증명을 외우는 건 말이 안 되고, 한 번 강의를 못 따라가면 도미노처럼 뒷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는 데다가 독학을 하자니 증명 한 문장을 이해하고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이후에 수학과에서 배운 편미분방정식개론, 복소해석학, 푸리에해석학 같은 수업은 꽤 재미있게 들었는데, 물론 교수님의 강의력이 좋으셨던 게 컸지만 이런 과목들은 내용 특성상 자연 속 물리적 현상과도 관련이 있어서 예시를 통해 이해하기가 좋았다. 하지만 역시 전반적인 감상은 수학을 전공으로 삼지 않길 잘했다는 안도감이었다.
기계공학도 만만치 않았는데, 4대 역학이라고 부르는 고체역학, 유체역학, 동역학, 열역학을 배우던 때까지만 해도 원래 공부해 오던 습관대로 공부하면 대체로 적당한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3학년으로 올라오면서부터는 각 과목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뭔가 '전공'스러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목 별로 특별한 툴을 이용해서 과제를 해야 한다던지, 내용이 조금은 더 현실적인 공학 문제를 다루게 되면서 복잡해진다던지, 중간/기말고사가 시험이 아니라 프로젝트 성격을 띤다던지 하는 식으로 변했다. 공부의 '장르'가 변했다는 느낌을 받아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강의 내용만 따라가도 벅찼던 3학년 당시 두 가지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생겼다. 하나는 여름방학 기간 동안 약 한 달 정도 학교의 지원으로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간 것이고, 다른 하나는 1학년때부터 바라왔던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영국에 간 것부터 이야기하자면, 3학년이 되도록 학교에서 특별한 소셜 활동도 하지 않고 보낸 채 주어진 학업만 하다가는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이런 생각은 그전 해 연말쯤부터 시작됐는데,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교내 소셜활동의 일환으로 1학년 공통 과목 중 하나인 일반 물리 과목의 멘토링 및 TA 활동을 하였다. 학교가 전원 기숙사 생활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지만, 당시 1학년 공통 과목은 평일 저녁 시간에 조교 혹은 멘토가 1학년 학생들에게 한국어로 복습 수업(?)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활동은 2학년 말부터 시작해서 4학년까지 계속했는데, 누군가를 가르치는 경험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잠깐 딴 길로 샜는데, 어쨌든 이런 생각으로 3학년 1학기에 충동적으로 해외지원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외국 나가서까지 공부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적당히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이 뭐가 있는지 보다가 영국 맨체스터대학에서 여러 나라의 외국인들과 한 반을 이뤄 영어를 배우는 프로그램을 찾았다. 평소의 나라면 이런 프로그램에 지원하지 않았을 텐데, 학부생 기간이 절반을 넘었다고 생각하니 여러 경험을 못해보고 졸업하면 후회할 것 같다고 느껴서 지원했던 것 같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선발이 되어서 학교의 지원을 받고 여름에 맨체스터로 떠나게 되었다.
한 달이 좀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그곳에서의 추억은 강한 여운으로 남았다. 일단 그 정도로 외국인 친구들과 가깝고 오래 지내본 게 처음이었고, 영어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할 일이 많았다 보니 2주 차쯤부터는 영어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홈파티 같은 곳에도 초대되어 가보고, 거기서 친해진 몇몇 중국인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에든버러에 1박 2일 여행을 가기도 했다. 학교 근처 펍에서 여러 대만 친구들과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기도 했고, 리버풀에서 비틀스로 유명한 펍에 가보기도 했다.
내향적인 내가 어떻게 당시 외국인 친구들과 짧은 시간에 그렇게 친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예상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로는 나를 포함하여 거기서 만난 친구들 모두 영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지내야 했다는 점이다. 모두에게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 와서 함께 생활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서로 의지하거나 동질감을 느끼는 게 있지 않았을까 싶다. 두 번째로는 영어라는 언어가 가진 특성도 있는 것 같다. 같은 반이었던 중국인 친구와 나눴던 대화 중 서로 크게 공감했던 게 '영어로 대화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원래의 나답지 않게 말이나 행동이 외향적으로 변한다'는 점이었다. 정확히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당시에 한참 영어를 주로 쓰던 시기에 나는 분명히 내가 달라졌음을 느꼈고, 그 원인에는 영어라는 언어가 가진 문화적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때 경험이 꽤 좋게 남아있어서 그런지 언젠가 영어권 나라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다.
사실상 세 번째 나를 알아가기 시리즈에서 학부 3학년 시절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걸 보면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꽤 풍부하고 의미 있었던 것 같다. 힘들었던 기억도 있고 재미있었던 기억도 있지만 모두 다 잊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의 찬란했던 내 모습이다. 이렇게 가끔씩 케케묵은 과거의 기억을 들춰보며 '그때 좋았지'하는 이 시간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문득 나보다 훨씬 오래 산 어른들이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자주 하시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삶이 싫다는 게 아니다.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 스스로에게 '열심히 살았다' '잘 살았다'라고 다독여주는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는 거다.
과거를 돌아보며 나를 다독이는 시간이 의미 있는 시간으로 느껴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지나온 시간을 회상할 때는 정말 힘들었거나 즐거웠던 기억이 또렷하게 그려지고, 이 두 기억의 공통점은 내가 진심으로 임했던 순간이라는 거다. 진심으로 보낸 시간은 다른 누군가의 시간과 바꾸기 힘든 값어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빈티지 옷들이 각자 다른 세월을 지나며 고유한 매력을 지니듯 각자의 인생도 고유한 매력이 있다. 매력적인 경년 변화를 가진 높은 값어치의 빈티지 옷을 만들려면 그 옷이 새 옷처럼 남아있는 게 아니라 터프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에이징이 되어야 하듯, 우리의 인생도 오랫동안 진심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멋있게 에이징이 되어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