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기(6)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by 찰나의생각

세그웨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는 학부연구생으로서 계속해서 연구실 생활을 이어나갔다. 세그웨이 결과물은 인턴 기간 중 사수 역할을 했던 선배가 후속 연구로 발전시키고자 하였고, 나는 다른 선배들이 하는 연구를 보조하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세그웨이 개발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다양한 구조물(?)을 만드는 일을 주로 하였는데, 주로 손과 팔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하는 착용형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였다. 솔리드웍스로 설계도 해보고, 3D 프린터도 사용해 보고, 납땜도 많이 해보았는데, 이때부터 하드웨어 제작 일은 내 적성과 맞지 않음을 직감했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어릴 때부터 프라모델이나 레고를 좋아해서 재밌게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간과했던 것은 현실엔 설명서가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저 설명서를 꼼꼼히 확인하여 문제없이 완성품을 만드는 것을 잘한 거고, 그 멋진 결과물을 내 손으로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던 거였다.


석박통합과정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당시 학교 분위기상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을 당연하게 생각했는지 신기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타대학원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타대학원을 생각했던 이유는 당시의 연구실 경험이 불만족스러워서가 아니었다. 로봇 연구실로서는 이미 교내에서 상당히 인기가 많았던 데다가, 연구실 인원도 열 명 정도로 기계공학과 연구실로는 규모가 커서 포화상태가 아닌가 싶었고, 함께 인턴 생활을 했던 동료나 다른 지원자보다 내가 경쟁력이 있을지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원 입학 면접 당시 면접관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한 질문이 있었다. '현재 지원한 연구실에서 못 받아준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냐'였는데, 알고 보니 다른 학생들은 '다음 학기에 다시 도전하겠다'라는 일편단심이 느껴지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아서 선배들이 한동안 놀렸는데, 내 대답은 '한 학기를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비슷한 연구를 하는 다른 연구실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였다. 내가 이런 대답을 했던 이유는 남들은 나보다 한 학기 빨리 대학원에서 연구를 시작하며 앞서 나가는 동안 나는 뚜렷한 방향 없이 불안에 떨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게 싫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다행히 지도교수님이 나를 받아주셔서 원하는 연구실에서 석박통합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지금까지도, 어쩌면 앞으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할 내면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 연구실에 방문해서 지도교수님과 학생들과 함께 밥을 먹었는데, 교수님이 내가 대학원생일 때부터 나에 대해 아쉬웠던 점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나는 능력에 비해 자신감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박사 졸업 당시에 해외 포닥을 가서 학계에 남는 루트를 선택할지, 산업계로 갈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산업계로 방향을 잡았는데, 그 이유도 포닥 과정을 잘 버틸 자신이 없고,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을지 확신이 없고, 지도교수 없이 독립적인 연구자가 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산업계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기계공학과 출신이고 연구실에서는 다들 로봇 만드는 연구를 하는데 나 혼자 AI를 메인 연구 주제로 잡았다는 점에서 AI분야와 기계공학/로봇 분야 중 나는 어디에 전문성을 둔 건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어중간한 전문성을 가진 건 아닌지, 산업계에서 이런 내가 박사로서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회사에 가는 것을 선택한 이유는 AI분야의 전문성을 현업에서 키우는 것이 나의 경쟁력을 키우기 좋겠다고 판단한 것도 있고, 경제적 안정이 어느 정도는 보장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회사 면접 프로세스는 포닥 지원에 비해 빠르기 때문에 산업계에서의 내 가치를 빠르게 판단하기에도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감 부족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나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의 생존 본능 같은 것에서 기인한 유전자에 박혀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누군가는 이런 불안감이 크고 누구는 작은 것을 보면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다.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불안한 감정은 유전적 혹은 선천적이지만 그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나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은 후천적으로 훈련되는 것이라는 거다.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해 두뇌가 뛰어나고, 그렇기 때문에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도 가질 수 있고 상상력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육체적으로는 다른 동물들보다 약하지만 두뇌는 뛰어났기 때문에 나를 해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가며 살아남아온 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불안한 감정은 마치 모든 인간이 갖고 태어나는 생존을 위한 알람 같은 것으로 여길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개념과 생각이 모여 만들어진 현대 사회에서는 생존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불안이라는 알람을 잘 다루는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건강한 인격과 가치관을 가진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릴 때 부모와의 유대가 중요하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는데, 나의 직/간접적 경험으로도 이 말은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대체로 화목한 가정에서 부모님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고 정신적,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았거나 가정환경에 어려움이 있었던 사람 중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알고 보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경우를 종종 보았다. 비록 나의 가정환경이 대단히 어려웠다거나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부모님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가 하면 고민이 된다. 부모님은 다르게 생각하시거나 서운해하실 수도 있지만 어린 시절에 내가 받은 사랑은 조건부적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 잘해서 시험 점수 잘 받아오면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시험을 못 봐오면 부모님께 걱정 끼치는 아들이 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어릴 때 이런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깊이 자리 잡아서 자신감 부족과 불안한 감정이 커진 건 아닐까 싶다.


지나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부모님을 원망할 수도 없다.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이었고, 당시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 같은 것이 알려진 게 없던 시절이었다.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떤 훈련을 해야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최근에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주환 교수님이 인정 중독에 대해 설명해 주신 것을 보았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말들이었는데, 영상 마지막에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6가지 자기 긍정 타인 긍정 훈련을 하는 것을 알려주셨다. '용서, 연민, 사랑, 수용, 감사, 존중'이 여섯 가지 내면 소통 훈련을 계속하면 긍정적 사고가 단단 해진다고 한다. 물론 금방 이런 습관이 들기는 어렵겠지만,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나 자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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