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

한밤중의 침입자

by 작가 앨리스


자취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자유’라는 걸 실감했다. 공부도, 생활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만 같았다. 특히, 셋째 오빠가 남긴 클래식 기타를 손에 넣었을 때,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래, 기타를 배워보자.”

없는 용돈을 쪼개어 학원에 등록하고, 물집이 터지고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습했다. 연습곡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곡만 잘 연주해도 반은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언니들과 함께한 자취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네 번의 이사를 거듭하며 살아야 했고, 그중에서도 두 번째 집이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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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은 남자 고등학교 아래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툇마루가 있고, 집 구조는 기역(ㄱ) 자 모양이었으며, 기역 자 갈고리로 문을 잠그는 방식이었다. 전형적인 옛날 집이었다.

마당이 있어 우리는 거기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쌀도 씻었다. 앞집, 옆집과 담 하나를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 서로 싸우는 소리도 생생하게 들렸다. 우리는 그 집에서 방 하나를 빌려 살았다. 방이라야 세 명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공간이었다. 방에는 책상 하나와 그 옆에 ‘비키니 옷장’이 전부였다.

새삼 우리 집이 그리웠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밤,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이 찾아왔다.

그날, 언니들은 교회 행사에 참석하느라 밤 11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기타를 연습하고, 숙제를 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싸늘한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이상했다.

어렴풋이 눈을 뜬 순간, 그것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은 복면을 두른 사내였다. 눈동자만 번뜩이며, 손에는 날이 번쩍이는 칼을 들고 있었다.

"조용히 해. 소리 지르면 죽는다. "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비명이 간신히 막혀 있었다. 숨을 삼키는 것조차 두려웠다. 이게 꿈일까, 현실일까.

"돈이나 돈 될 만한 거 다 내놔."

칼끝이 내 목에 바짝 다가왔다. 그 순간, 나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숨을 고르며 손가락으로 천천히 책상을 가리켰다. 책상 위에는 지갑과 버스 회수권이 있었다. 내일 참고서 살 돈 몇천 원도 있었다.

강도의 시선이 책상으로 향하는 순간, 나는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엄마야! 강도야!!!"


순간, 강도가 흠칫 놀랐다. 그는 칼을 움켜쥔 채 머뭇거렸다.

"이 XX이!"

강도는 욕을 내뱉으며 재빨리 문을 발로 차고 뛰쳐나갔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고, 심장은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속옷 바람으로 뛰어나온 주인아주머니

"무슨 일이야!"

바로 건넌방에서 자고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왔다. 그때까지도 나는 덜덜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강… 강도가 들어왔어요…"

아주머니는 내 말을 듣자마자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뭐 없어졌냐? 다친 데는 없고?"

질문이 폭풍처럼 쏟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몸이 마비된 듯 굳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언니들이 돌아올 때까지 주인집 방에서 함께 있었다. 언니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왜, 이제야 와? 나 죽을 뻔했잖아!"

언니들은 깜짝 놀라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나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후, 나는 변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주인아주머니는 문을 튼튼한 열쇠로 바꿔주셨다. 언니들도 늦게까지 약속이 있으면 반드시 한 명은 먼저 귀가하도록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잠을 잘 때 꼭 문단속을 다시 하고, 머리맡에 야구방망이를 두고 잤다.

잠결에 작은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고, 창문이 흔들리기만 해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서움과 두려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걸 보고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이번에는 창문이 튼튼하고, 대문이 있는 현대식 주택이었다.

하지만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튼튼한 집이어도, 어두운 밤이면 그날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결국, 엄마는 우리를 친척 집으로 자취방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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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교감 선생님(나의 학교는 아님) 친척댁이라 훨씬 안전했고, 그제야 나는 비로소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문단속을 철저히 하는 습관이 생겼다. 작은 발소리에도 귀를 기울였고, 늦은 밤 혼자 있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동시에 그날의 내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나는 두려움 속에서도 소리를 질렀고, 강도를 쫓아냈다. 그 순간 내가 침묵했다면, 일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지금도 한밤중에 누군가 방문을 열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혼자가 되어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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