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나의 국민학교 시절

by 작가 앨리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일요일 아침이면 동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가 고요한 새벽을 깨웠다. 그 노래가 시작되면 나는

재빨리 일어나 빗자루를 들고 골목으로 나갔다. 골목마다 나와 같은 아이들이 어설프게 빗자루를 휘저으며

먼지를 일으켰다. 우리는 마치 새마을 운동의 작은 전사라도 된 듯, 골목길 구석구석을 쓸며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 시절은 뭐든 "함께"였고 "열심히"였다. 늦잠이 그리운 일요일 아침에도 그 노래가 우리들의 새 아침을 밝혔다. 누가 청소에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 월요일에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했기에 청소를 하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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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멀었다. 마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긴 등굣길을 함께 걸었다. 논길을 지나고,

밭길을 넘고, 저수지 옆을 지날 때쯤이면 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길은 참 길었다.

그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만의 작은 세상이었다. 돌을 차며 간단한 게임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며 웃고 떠들었다. 어느 날은 저수지에 비친 우리 모습을 보며 "누가 제일 멋진지"를 논쟁하기도 했다.

그런 등굣길은 지금 돌아봐도 내 유년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에 빠져 길 위의 재미를 잊었던 때도 있었다. 3학년쯤 되면서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걸리버

여행기, 톰 소여의 모험, 프란다스의 개, 알프스소녀 하이디 같은 책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 채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어느 날, 사고는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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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여느 날처럼 책을 들고 매점으로 가던 중이었다. 눈은 책 속 문장에 고정된 채, 나는 연못 옆의 시멘트 길을 걷고 있었다. 발끝이 삐끗한 순간, "철퍼덕!" 나는 연못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몸을 휘감으며 순식간에 현실로 나를 끌어당겼다. 아이들은 웃음과 비명을 뒤섞어내며 달려왔고, 매점 아줌마는 “이게 무슨 일이냐!”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창피함에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물에 흠뻑 젖은 채 어쩔 줄 몰라했다.

선생님은 나를 보며 걱정 어린 얼굴로 말씀하셨다.

"오늘은 조퇴해라.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쉬는 게 좋겠다."

나는 그날 연못 사건으로 첫 조퇴를 했다. 그 이후로는 조퇴는커녕 지각조차 한 번 없었고, 국민학교 졸업식 날 6년 개근상을 받았다. 연못 사건은 그렇게 내 삶의 한 귀퉁이에 남은 웃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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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예뻤다. 운동장을 둘러싼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만들어낸 그늘은 아이들에게 안식처였다.

가을이 되면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운동장에 수북이 쌓였다. 주번이었던 날, 친구들과 낙엽을 모아 태우며 장난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낙엽 더미에 불을 붙이면, 특유의 낙엽 타는 냄새가 온 운동장을 채웠다. 막대기로 낙엽을 쑤시며 불길을 살피다가 불꽃이 튀어 식겁했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 낙엽 타는 냄새는 아직도 내게 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아련한 향기다.


4학년 때, 졸업식장에서 상을 받는 선배를 보며 나도 저 연단에 서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저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날, 나는 교육장상을 받았다. 연단에 올라 상을 받을 때, 엄마가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는 게 이런 거구나.”

그날의 환한 미소는 지금도 내게 힘이 되는 기억이다.


최근, 국민학교 때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ES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40년도 더 된 불만을 꺼냈다.

“서예반에 들어가 열심히 연습했는데, 대회 직전에 네가 참가자로 바뀌었더라. 선생님들이 참 불공평했어.”

나는 순간 멍해졌다.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릴 적, 몰랐던 사이에 내가 친구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 친구가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는 걸 보면 정말 억울했겠다 쉽니다. 그 시절의 꼬맹이 ES에게 오늘의 내가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그땐 몰랐어.”

ES는 이내 웃으며 “지금은 괜찮아. 그땐 어린 마음에 서운했던 거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미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국민학교 시절은 자연과 동화책 속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새벽종이 울리며 시작된 하루, 낙엽 타는 냄새로

가득한 운동장, 연못에 빠진 창피함, 엄마의 미소를 보고 싶어 했던 작은 소망들.


그 시절의 모든 순간은 이제 내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장면들로 남아 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만,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여전히 그 길 위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시절의 나에게 고마워. 그리고 그 시절의 모든 순간들에게, 너희가 있어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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