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끝에서 피어난 겨울별미

엄마의 찐빵, 조청과 강정이 그리울 때

by 작가 앨리스

어제오늘 참 춥다.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뿜는 호빵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신 찐빵이 생각난다. 호빵 하나를 손에 들면, 그때 그 겨울날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 집은 6남매였다. 큰오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함께 자란 기억이 거의 없다. 큰오빠는 서울 고모 댁에서 학교를 다녔고, 방학이나 명절이 돼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큰오빠 생일이 다가오면 엄마는 전날부터 쌀을 불려 떡을 준비하셨다. 떡을 이고 지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던 엄마의 모습은 어렴풋하지만 따뜻하게 떠오른다.


나와 언니의 생일에는 엄마가 늘 찐빵을 만들어 주셨다. 밀가루 반죽은 막걸리로 버무려지고, 이스트를 넣어 아랫목에 이불로 덮어 놓으면 시간이 지나며 뽀얗게 부풀어 올랐다. 엄마는 팥을 삶아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하고 절구에 빻아 팥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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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을 만드는 날이면 언니와 나는 엄마 옆에 앉아 반죽을 동글동글 굴렸다. 손바닥 위에서 반죽을 펴 팥소를 넣고, 다시 동글게 모양을 잡았다. 엄마는 "네가 만든 만큼 먹을 수 있다"라며 우리를 격려하셨다. 우리는 엉덩이를 한 번도 떼지 않고 찐빵을 만들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며 찐빵이 완성되면, 눈 뭉치처럼 하얀 찐빵이 솟아올랐다. 그 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 번에 다섯 개씩도 먹었던 그 찐빵은 지금의 어떤 빵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엄마의 손맛이었다.


찐빵이 한솥 완성되면 친구들을 불러 함께 나눠 먹었다. 겨울날, 웃음소리와 함께 찐빵을 먹던 꼬맹이 시절은 이제 먼 추억이 되었지만, 그날의 따뜻함은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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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다가오기 한 달 전부터 엄마는 조청 만들기에 나섰다. 찹쌀을 깨끗이 씻어 물에 담가 불리고, 푹 삶아 고소한 향을 주방 가득 퍼지게 했다. 삶아낸 찹쌀을 항아리에 넣고 엿기름가루를 섞은 뒤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항아리 안에서 달콤한 물이 만들어지면 솥에 부어 천천히 끓이는 작업이 이어졌다.

엄마는 절대 서두르지 않으셨다. 약한 불에서 꾸준히 저어가며 조청이 점점 윤기 나는 갈색으로 변했다. 조청이 완성되면 엄마는 땅콩엿과 깨엿을 만드셨다. 따끈따끈한 엿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아드는 달콤함은 지금의 초콜릿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함이었다.


조청이 완성되면 강정을 만드는 일이 이어졌다. 찹쌀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넓게 펼치고,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로 잘라 따뜻한 아랫목 위에서 말렸다. 바삭하게 말린 반죽을 뜨거운 기름에 넣으면 금세 부풀어 오르며 노릇노릇해졌다.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법 같았다.

튀겨낸 강정을 달콤한 조청에 빠르게 묻히고 고소한 깨를 뿌리면 명절 간식이 완성되었다. 과자가 흔치 않던 그 시절, 강정은 우리 가족의 최고의 간식이었다. 엄마는 솥 앞에서 땀 흘리며 웃으셨고, 우리는 강정을 먹으며 행복했다.


지금은 화려한 초콜릿과 과자가 넘쳐나지만, 엄마의 찐빵과 강정, 조청은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정성과 사랑, 그리고 우리를 위한 희생이 녹아 있는 선물이었다.


엄마가 솥 앞에서 땀 흘리며 웃던 모습, 찐빵을 나눠 먹던 친구들과의 웃음소리, 강정이 부풀어 오르는 기적 같은 순간들. 그 모든 기억이 내 마음속에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다.


"엄마, 엄마가 만들어 주신 그 찐빵과 강정을 한번 만이라도 맛볼수 있으면 좋겠어요. 너무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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