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통학전쟁 vs 배고픈 자취생활 다시 선택하라면?

지각은 절대 안 돼, 중학교 적응기

by 작가 앨리스

아침 운동을 하던 중,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다.

겨울이었을까, 봄이었을까.

차가운 공기 속에서 숨을 몰아쉬며 버스를 기다리던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맞이한 중학교 생활, 그리고 그 지옥 같은 통학 전쟁.

나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어이 그 버스에 올라타야만 했다.

버스와의 전쟁 – 놓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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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 시내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 대 없었다.

버스를 놓치는 순간, 그것은 곧 지각이었고, 지각은 곧 처벌이었다.

아침이면 나는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고 신작로를 뛰었다.

비포장도로였던 신작로는 비가 오면 진창이 되었고, 눈이 오면 얼음판이 되었다.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넘어져 교복이 진흙탕물이 되고 말았다.


버스 정류장에는 이미 도착한 언니, 오빠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윗동네와 아랫동네 학생들까지 합세하면 버스 정류장은 마치 전쟁터 같았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기필코 버스에 올라타야 한다."

멀리서 버스가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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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누군가 외치는 순간, 온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버스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문이 열리기도 전에 학생들은 문으로 달려들었다.

누군가는 손을 뻗어 버스 손잡이를 붙잡았고,

누군가는 간발의 차이로 밀려나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차장 언니의 고함이 들렸다.

"밀어! 밀어!"

나는 밀리고, 끌려가고, 신발이 벗겨져도 다시 신을 틈도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어떻게든 계단에 발만 걸치면 성공한 것이었고, 그렇지 못하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건 곧 지각을 의미했다.

교문 앞에서는 선도부가 눈을 번뜩이며 지각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걸리면 운동장 두 바퀴를 뛰거나, 태도 점수가 깎였다.


나는 이 지옥 같은 아침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 전쟁을 견디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엄마를 설득할 방법을 짜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붙잡고 졸랐다.

"엄마, 나 자취하면 안 돼? 언니들이랑 같이 살면 되잖아!"


큰언니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고,

둘째 언니는 다른 지역 고등학교로 진학해 집을 떠난 상태였다.

"딸 셋이 함께 지내면 엄마도 덜 걱정될 거야."

나는 필사적으로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침내 허락해 주셨다.



하지만, 바로 그 무렵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5월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수업을 듣던 중

담임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가방 싸.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 말이 내 귀에 꽂히는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시던 할머니가?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급히 집으로 향했다.

집 안은 이미 상복을 입은 어른들과 곡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할머니 방에서 함께 자고, 잔심부름을 도맡았고,

할머니가 주시는 간식을 먹으며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다락방에 숨어 책을 읽느라, 할머니의 부름을 못 들은 척하기도 했다.

그때는 단순한 사춘기였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

좀 더 잘해드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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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꽃상여를 타고 할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다.

5월의 신부가 되어, 꽃이 만발한 계절에 떠나셨다.


장례가 끝난 뒤, 집 안은 텅 비어 버렸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만 남은 조용한 집이 낯설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자취를 허락해 달라고 졸랐다.

이제 더 이상 아침마다 통학 전쟁을 치르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허전한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엉망진창이지만, 꿈꾸던 자취 생활을 시작한다니 마냥 좋았다.

드디어 자취가 시작됐다.

우리가 살게 된 곳은 시내 중학교 근처의 작은 2층집이었다.

1층에는 집주인이 살았고, 2층에는 주인집 친척뻘 되는 남학생 둘이 하숙하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 방에는 우리 세 자매가 함께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자유와는 달리, 자취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아침이면 도시락을 싸야 했고, 설거지는 내 몫이었다.

큰언니는 출근하느라 바빴고,

작은언니는 나보다 일찍 등교해야 해서 먼저 나가버렸다.


앞방의 하숙생 오빠들은 1층에서 밥상을 차려서 올려다 주었다.

아, 너무너무 부러웠다.

밥을 다 먹은 후 상을 마루에 내다 놓았다.

그런데…

그 상 위에는 가끔 분홍 소시지와 어묵이 남아 있었다.

우리 집에서 가져온 반찬은 늘 김치, 꺳잎, 콩자반, 멸치볶음, 감자볶음뿐.

그런데 소시지라니!


어느 날, 나는 하나 남겨진 소시지를 한입 집어 먹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짭조름한 맛.

"이게…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그 후 몇 번인가 몰래 집어 먹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 자취 생활의 작은 행복이었다.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돼

자취를 하며 얻은 자유는 컸다. 시간의 자유가 컸다.

이제 더 이상 지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고, 남은 시간에 좋아하는 책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늦게 까지 시내를 싸돌아 다니며 중앙시장에 가서 빨간 떡볶이도 먹고, 뛰 김도 먹고,

영화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는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단순한 자취가 아니라,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가끔은 집에 계신 엄마가 그리웠지만,

주말에 가면 되니까.

나는 자취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아침마다 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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