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toronto
유학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다이내믹했다.
딱 하나, 돈만 조금 여유가 있었더라면 오래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낼 때마다 마음속에 스며드는 불안은 꽤나 집요하고 절박했다. 그렇다고 아빠에게 손을 벌리 수 없어서, 큰언니에게 사정을 애기하고 손을 벌렸다.
'내가 이곳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매일 아침, 그런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영어가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할 즈음, 나는 주말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다.
한국 친구들은 대부분 코리아타운의 한식당에서 일하며 팁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 자랑했다. 룸메이트도 한국 식당에서 일하면 주급 이외에도 팁이 쏠쏠하다며 자랑을 했다. 나는 선뜻 그 길을 선택할 수 없었다. 돈은 조금 빨리 벌겠지만, 내가 이곳에 온 이유—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다는 목표와는 더 멀어지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Coffee Time’이라는 이름의 쇼핑몰 내 카페였다. 커피, 도넛, 머핀, 베이글, 샌드위치까지 파는 넓은 매장. 아침마다 북적이는 손님들로 숨 쉴 틈도 없었다.
은퇴한 캐나다 어르신들은 매일 아침 99센트 짜리 커피와 머핀을 사러 왔다. 작은 주문 하나에도 까다로운 요구가 이어졌다.
“커피는 너무 뜨겁지 않게, 베이글에 치즈는 아주 얇게, 크림은 이만큼만!”
베이글 하나 주문받는 데도 온 신경이 곤두섰다. 하지만 그 경험이, 내게 많은 성장의 기회를 주었다. 주문을 정확히 들으려 귀를 기울이다 보니 듣기 실력도 자연스레 늘었다. 고객들의 주문을 받으며 대화 스킬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어느 날엔 유난히 까다롭게 굴던 손님에게 뜻밖의 후한 팁을 받았고, 그날 하루가 유난히 보람찼던 기억도 있다. 친절은 분명, 되돌아오는 법이라는 걸 그 카페에서 배웠다.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경험을 꼽으라며, 함께 일하던 십 대 친구들이 마리화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것이었다. 너무나 충격이었다.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그런 일이 내 곁에 그렇게 가깝게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은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걸.
그럼에도 파트타임 일은 내게 작은 보상을 안겨줬다. 일이 끝난 뒤, 사장님은 늘 남은 도넛과 머핀을 챙겨주셨다. 덕분에 식비를 절약할 수 있었고, 룸메이트는 내가 가져오는 머핀을 맛있게 먹었다. 특히 크리스마스 전, 도넛과 머핀을 박스째 선물로 받은 날은 잊을 수 없다. 한동안 도넛과 머핀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 이후로는 입에도 대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카페에서의 시간은 생활비를 어느 정도 충당해 주었을뿐더러 나의 영어 실력까지 덤으로 성장시켜줬다.
마침내 나는 ‘Travel and Tourism’ 학교에서 전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았다. 그곳에서 현지 가이드로 일해보라는 제안도 받았다. 삶이 새로운 무대로 접어들려는 찰나, 한국에 계신 아빠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식이 날라왔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뒤로, 아빠는 늘 혼자 셨다. 그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여기 남아서, 새롭게 출발할까?’
나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같이 살던 룸메이트는 교포 2세와 사귀고 있었고, 약혼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나는 결단을 내리고,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돌이켜보니, 26살에 내린 토론토행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유학은 단지 영어 공부 이상의 의미를 내게 남겼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단련했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은 이후 나의 직업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여러 일을 경험한 후 최종적으로 영어 사교육 분야에 정착을 했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영어강사에서 시작해서, 원장까지 내 인생의 29년을 이일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잠시 퇴사 후 몇 개월의 휴식과 다른 일에 도전해 본 후 작년 가을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왔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 속에서 사는 게 즐겁다. 아이들의 영어 학습을 걱정하는 부모님들을 상담하며, 그 아이에게 맞는 방식으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일도 함께 해오고 있다.
성장은 언제나 불편함 속에서 이루어지며, 익숙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흔들릴 때, 우리는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
인생의 어느 시점도 늦은 시작은 없다. 지금 이 순간이, 앞으로의 삶을 다시 써 내려갈 가장 좋은 때다.
나의 유년기부터 유학기까지의 글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매거진 '우리 아이 왜 영어가 싫을까요?" 제목으로 만나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