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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청춘은 길 위에 있었네

back to the twenties

by 작가 앨리스

1995년 그 겨울, 끝없이 펼쳐졌던 청춘의 지도

캐나다의 겨울은, 내가 알던 겨울과는 차원이 달랐다.


9월의 끝자락,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뺨이 얼얼해지더니, 10월이면 어느새 세상은 칼바람이 불었다. 코끝이 얼어붙고,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그 추위 속에서 나는 두툼한 장갑과 털모자로 중무장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눈이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2-3cm 쌓이는 게 아니라 세상을 통째로 삼켜버릴 기세로 내렸다. 그래서 아이들은 '스노 데이'를 손꼽아 기다렸다. 학교가 쉬는 날, 그들에게 눈은 축복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게 그 겨울의 진짜 선물은, 뜻밖의 칸쿤행 비행기 티켓이었다.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던 공지 한 장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멕시코 칸쿤 여행."

칸쿤? 그게 어디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매서운 캐나다의 겨울을 피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난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이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멕시코를 가볼까?" 그 생각 하나로 파트타임으로 모아둔 돈을 탈탈 털었다. 그렇게 크리스티나, 안젤리카와 함께 우리는 추위를 피해 작은 모험을 떠났다.

멕시코 공항에 도착하니 따뜻한 여름 날씨다. 공항 락카에 겨울 패딩을 맡겨두고 칸쿤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했다. 겨울 나라에 갇혀 있던 몸과 마음이 단숨에 풀려버렸다. 파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우리는 비로소 숨을 돌렸다. 이구아나가 침대 위까지 기어올라와서 기겁을 했지만, 리조트 앞에 펼쳐진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그동안 공부하려, 파트타입으로 일하랴 타국에서 긴장으로 지친 피로를 풀기에 더없이 훌륭한 여행이었다. 이제야 왜 캐나다 사람들이 겨울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칸쿤으로 몰려가는지 알 것 같았다. 그곳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삶에 잠시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작은 천국이었다. 칸쿤은 캐나다 미국 사람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에게도 겨울 휴가지로 많이 찾는 곳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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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쿤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고대 마야 문명의 숨결이 깃든 치첸이트사에서였다.

365개의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단에 다다랐을 때, 이곳에서 신에게 바쳐졌다는 피의 의식을 떠올리며 인간의 역사와 신앙, 그리고 삶과 죽음의 무게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날 밤, 칠흑 같은 하늘 아래서 맨눈으로 목성을 바라보던 순간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별처럼 반짝인다. 세상은 이렇게 넓고, 나는 그저 작은 점 하나일 뿐이라는 깨달음. 그 광활함 속에서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던 내 젊은 날의 박제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꿈같던 여정, 뉴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당시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가려면 비자가 필요했는데 친구 둘은 비자를 못 받아서 나와 일본 친구만 뉴욕을 가게 됐다. 언제 또 뉴욕을 갈 수 있을까 싶어서 나는 밤새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뉴욕에 새벽에 도착했다. 토론토에서 뉴욕, 밴쿠버에서 시애틀은 교통비도 아낄 겸 모두 그레이하운드를 이용했다.

12월의 뉴욕은, 마치 크리스마스 카드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록펠러 센터의 거대한 트리, 찬바람에 흩날리던 각국의 국기, 그리고 걸어서 지치고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차이나 타운 길거리 음식의 따스한 온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무엇보다 잊지 못할 건, 브로드웨이의 극장 불빛 아래에서 본 '레미제라블'과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망설였어야 했지만, 그날만큼은 배고픔도 잊었다. 무대 위 배우들의 노래 한 소절, 눈빛 하나하나가 내 청춘의 가슴을 울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뉴욕에 오면 뮤지컬을 보라고 하는구나." 그 선택은 지금까지도 내 인생 최고의 가치소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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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행은 귀국글에 밴쿠버에서 대만 친구 안젤리카의 삼촌댁에서 머물면서 대만 가정식을 맛보며 잠시나마 또 다른 문화를 체험했다. 밴쿠버의 스탠리파크, 빅토리아섬, 가스타운 등 친구와 가고 싶은 곳은 모두 도장을 찍었다. 그러다 귀국 날짜를 며칠 앞두고 혼자 버스를 타고 시애틀까지 달렸다. 혼자였기에 더 많은 생각을 했고, 더 깊은 질문들을 품었다. 시애틀은 해안도시답게 피셔스마켓 같은 어시장이 발달했고, 연어요리가 일품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 조금 쓸쓸하고 약간 무섭긴 했다.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혼자 '나는 여기서 무엇을 얻었을까?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계속 걸었다.


1996년, 안젤리카와 함께 귀국해 서울의 거리를 걷던 날도 아직 선명하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2016년, 대만 가오슝에서 다시 만난 우리. 시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예전처럼 웃고, 이야기하고, 함께 여행을 했다. 인연이란 그렇게, 다시 이어지는 법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때 맺었던 모든 사람과의 인연, 그리고 그 순간의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는 걸 느낀다. 청춘은 늘 부족하고 서툴렀지만, 그래서 더 빛났다.

기회가 오면 주저하지 않고 잡았고, 두려움보다 설렘이 더 컸기에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했어.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꿈꾸는 대로 살아서 지금의 내가 있어."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다시 한번 다짐한다.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꿈꾸고 또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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