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삭 속앗수다
요즘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TV 앞에 앉는다.
드라마 폭삭 속앗수다 정주행 때문이다.
처음엔 그저 재밌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하나같이 극찬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
처음엔 애순이 때문에,
보다 보니 우리 엄마가 자꾸만 겹쳐 보여서였다.
울지 않으려 해도, 결국 울 수밖에 없었다.
폭삭 속앗수다는 한 여자의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엄마와 딸’, ‘부모와 자식’이라는 더 큰 서사가 흐른다.
삶을 견뎌낸 이들의 이야기다.
남편을 잃고 시댁에서 소박맞은 애순이 엄마는 결국 재혼을 택한다.
그 와중에도 여섯 살 딸 애순이는 고개를 넘어 엄마를 찾아간다.
그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단지 엄마니까.
애순이는 그렇게 자란다.
엄마가 좋아서, 엄마가 웃는 얼굴이 좋아서
시험지 100점을 들고 달려오는 딸이 된다.
그 사랑 하나 붙잡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는 울었다.
이 드라마는 제주도의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아픔의 공간이다.
살게도 하고, 앗아가기도 한다.
제주도 지인에게 들은 적이 있다.
60~70년대까지도 일부다처제가 많았고,
그 속에서 여인들은 조용히, 그러나 꿋꿋하게 견뎠다고.
폭삭 속앗수다는 그런 여자들의 삶을 시처럼 풀어낸다.
특히 애순이의 시.
그 짧은 시 속에 살아낸 모든 피와 눈물이 담겨 있다.
시는 삶이다.
소설처럼 디테일하지 않아도,
수필처럼 수수하지 않아도
단 열 줄이면 충분하다.
고작 그 열 줄에 피를 다 토해 내고야 만다.
가슴을 절절하게, 몽골몽골 하게 흔들어 놓는다.
나는 깨달았다.
시가 제일 세다.
그리고 그 시의 끝에서,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부모가 있다.
애순이와 관식이는 네 살배기 아들을 바다에 잃는다.
그 후, 아무 말 없이 그 슬픔을 견디며 살아간다.
수십 년 뒤, 내시경 중 최면 상태에서 흘러나온 관식이의 한 마디.
“내가 축대에 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 순간, 나는 아빠 관식이의 감옥을 보았다.
아빠는 여전히, 그날 거기 가지 않았던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그 오래된 죄책감이, 아직도 그를 옭아매고 있었다.
애순이의 얼굴이 말해준다. 아무 말 안 해도 다 느껴졌다.
이 장면에서 나는 우리 부모님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도, 22살 꽃 같은 아들을 먼저 보냈다.
그 아픔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다.
나는 몰랐다.
중학교 1학년, 너무 어려서 그 깊은 슬픔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오빠가 대신 친척 이장을 갔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일 이후, 아빠는 자책했고,
결국 위 천공까지 생겨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 죄책감과 슬픔을 말없이 삭이던 그 모습을,
나는 이제야 떠올린다.
그리고 그걸 이제야 이해하게 된다.
가슴이 한 번 더 찢어진다.
삶은 잔혹하다.
부모의 죽음은 추억이 되지만,
자식의 죽음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남은 자식을 위해 살아내야 한다.
오늘 하루를 또 넘기다 보면,
어떻게든 시간이 흐르고 또 살아지게 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사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살아지는 것’일까.
나는 그 경계에서 망설이는 날이 많다.
우리 엄마는 겨우 예순을 넘기고 세상을 떠나셨다.
사위 얼굴도, 손주 얼굴도 모른다.
왜 그렇게 서둘러 가셨을까.
내가 너무 늦게 철이 든 걸까.
더 오래 같이 있어야 했는데.
더 따뜻하게, 더 자주, 표현했어야 했는데.
이 드라마는 곽티슈 한통을 다 쓰고도 모자라게 만든다.
내 삶의 어딘가를 깊이 건드린 작품이었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삶, 엄마의 눈물, 그리고 그 엄마를 닮은 내 모습까지.
마치 오래된 편지를 다시 읽듯,
그리움과 미안함이 함께 밀려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한가지를 더 배웠다.
사람은 결국 사랑으로 버틴다.
잊지 못하는 사랑,
잃었지만 여전히 품고 있는 사랑,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지금,
누군가에게 건네야 할 사랑.
엄마, 보고 싶어요.
당신이 그렇게 살아낸 삶을,
이제 내 아이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려 합니다.
사랑을 배운 자로서, 살이 있는 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