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빨리 세상 밖으로

권고사직

by 작가 앨리스


사람의 앞날은 정말 모르나 봅니다

9월이 되자마다 남편은 회사로부터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고 전화가 왔어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갑자기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정년까지는 아직 2년 6개월이나 남아 있는데 말이죠.

회사란 곳은 늘 이렇죠.

조용히, 말없이, 그러면서도 계산은 빠르게.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직원에게 남은 월급을 쥐여주고는, 나가달라고 말합니다.

남편도 이제 그 대상이 되었어요.

2025년은 68과 69년생이 그 대상이라 그 수가

족히 100명에 육박한다네요.

2주 정도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 같아요. 일요일까진 생각도 못 했던 일입니다.

그동안 직급이 내려가고, 시프티제로 전환된 이후 줄어드니 월급봉투만큼
회사에 대한 마음도 점점 멀어졌겠구나 생각했어요.

남편도 막상 권고사직을 받으니, 허망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겠지요.

왜 안 그렇겠어요.

나도 마음이 이런데,

한 사람의 청춘과 시간이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아 속상하고 서운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JM 씨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

묵묵히 가족을 위해 버텨온 시간들, 말없이 감당해 온 책임의 무게,

당신이 있어 우리 가족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애들도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해요.

애들도 이제는 다 컸으니, 자기 용돈은 스스로 벌어서 쓰라고 하면 되죠.

17년 차 우리의 주말부부 이력도 이제는 끝이 나려나 봅니다.

삶의 한 챕터가 이렇게 조용히 넘어가고 있는 지금,

나는 그저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회사를 떠난다고 당신의 가치가 줄어드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지금의 당신이 더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많겠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준비해 온 것들—

해외 직구, 온라인 쇼핑몰, 유튜브 채널 등

그 모든 노력들이 헛된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어요.

당장은 여행도, 여유도 잠시 미뤄야겠지만

분명 다시 좋아질 거예요.

내가 28년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일을 해보니, 또 그것 또한 할만해요.

그러니 걱정 말아요.

우리는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는 5년 단위로 인생을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 지금의 이 변화는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매일을 좋은 기분으로 시작하고,

책을 읽고, 자연을 가까이하며,

적게 벌고 적게 쓰더라도,

우리가 서로를 믿고 응원한다면

그 또한 충분히 괜찮은 삶이 될 거예요.


지금까지 너무 수고 많았어요.

앞으로는 나와 함께, 당신의 삶을 더 따뜻하게 살아보아요.

고맙고, 사랑합니다.


인생은 늘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지만,

이제는 자기중심을 잡고, 흔들리면서도 유연하게

살아가면 되죠.

이제는 우리 집 거실이 당신과 나의 일터가 되었네요.

16년을 돌아 돌아 우리 가족이 완전체가 되었네요.

이번 주말에는 우거지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 그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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