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었다고,

이렇게 밖에는,,,,

by 작가 앨리스

"어쩔 수가 없다"라는 말에 대하여

“어쩔 수가 없다.”

이보다 더 간결하고, 절망적이며 동시에 현실적인 말이 있을까.

최근에 본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제목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왜 그 인물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토록 처절하게 버텼는지, 왜 그럼에도 누구 하나를 원망할 수 없었는지를.

나는 그 영화를 보며 몇 번이나 속으로 그 말을 되뇌었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가족도 불완전 하긴 마찬가지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존재.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더는 갈 데 없는 길 위에서 그는 묻는다.

"왜 이렇게까지 했냐"라고.

그 질문 앞에 남는 답은 결국 하나다.

“어쩔 수 없었어.”

그 말은 변명이 아니라, 현실이다.

가족을 위해, 생존을 위해,

"체면 따윈 이미 화장실 문 앞에서 무릎 꿇었다.'

끝까지 가는 사람들의 이유는 대개 비슷하다.

나는 어느덧 ‘은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세대에 들어섰다.

아직은 본인은 더 일할 수 있지만, 더 이상 사회가 원하지 않는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이제 쉬시라고 친절히 보내버린다.


언제부턴가 사회는 더 빠르게, 더 새롭게, 더 젊게 굴러가고 있고, 우리는 어제까지 익숙했던 것을 오늘은 다시 배워야 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젊은 누군가 말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그 말이 회자되는 세상을 보며, 나는 가끔 억울하다.

우리는 진짜 열심히 살았다.

성실함이 미덕이라 배웠고, 책임감이 자랑이던 시대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제 그 성실함은 무능력으로, 책임감은 시대착오로 치부되곤 한다.


그 억울함이,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과 겹쳐졌다.

성공한 인재였고, 존경받던 리더였던 이들이 은퇴를 맞이하며 겪는 좌절과 상실감. 어쩜 그리도 초라해 보이던지.

그 장면 하나하나가, 나와 내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무언가가 끝나가는 세상’과 ‘무언가가 새로 시작되는 세상’ 사이에 서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제 AI 하이브리드 시대로 가고 있다.

그 사이에서 다시 배우고, 다시 적응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어떤 나이’보다 ‘어떤 능력’이 중요해졌다.

더 이상 일자리를 ‘찾는’ 시대가 아니다.

나만의 일을 ‘창조’해야 살아남는다.

어쩌면 그게 지금의 정답이다.

영화는 결국 우리에게 말한다.

고개를 숙이지 말고, 억울해도 주저앉지 말라고.

변화는 언제나 폭력적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대비하는 것뿐이라고.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만의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나도 오늘 다시 다짐해 본다.

어쩔 수 없더라도,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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