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건 기억이 아니라, 기억이 나를 먹는 구조다
방학식날 분위기는 수능이 끝났다는 환호성, 방학 때 어떻게 실컷 놀까 궁리하는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재수를 한다는 다른 학생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일단 놀고 공부한다는 말을 웃으면서 하고 있다.
나는 이 분위기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고 그저 부러움 반, 나는 내 길을 간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수능을 망친 나는 겨울방학을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재수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괴롭힘 당하고 소문에 휘둘렸던 건 약했기 때문이야.”
그 말이 맞든 아니든, 나는 근처 헬스장 1년 이용권을 끊었다.
새벽에 일어나 도서관으로 가 공부를 하고 저녁에 헬스장에 가 운동하고 주말공휴일이 없는 일상을 반복하였다.
매일 같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야 했던 학교는 더 이상 없었다.
모든 스케줄이 내 주도로 완성되고 나는 내가 만든 계획에 나를 집어넣었을 뿐이었다.
버스에 탈 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 "나도 얼마 전까지 저랬구나"를 떠오르고 학교 다닐 때 생각도 못했던 평일날 한적한 길거리를 걸어보며 인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유의 느낌을 몸소 체감하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의식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켜왔다.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들은 내가 불러오지 않았음에도 불현듯 떠올라 나를 사로잡히게 하며 그때마다 나는 내가 성공하면 이 기억도 사그라들겠지라며 다짐할 뿐이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헬스장을 가던 나에게 헬스 트레이너가 말을 걸었다. "회원님 처음보다 몸이 많이 좋아지셨네요?" 그 헬스 트레이너는 얼굴만 알고 평소 말 한 번 나눈 적 없었지만 영업용 멘트였을까? 잠시 생각을 해봤지만 이내 다른 생각으로 나를 인도하였다.
"이제 나를 괴롭히던 애들은 근황도 모르고 더 이상 보지도 않는데 왜 헬스장에 다니고 있지? 란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복수를 위해 운동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들과 아무 상관없는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남은 건 나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습관, 몸과 마음의 복구 과정이었다.
그들이 내게 남긴 상처는 이제 내가 스스로 회복해야 할 몫이 남았고 쉽지 않겠지만 무너지지 않은 나에게 스스로 고맙다는 말을 건넬 수 있는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