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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Hong Dec 21. 2021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소설

우울에 대한 공감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이 우울해지곤 했는데, 손에서 책을 놓을 수는 없었다. 지난 5일간 최은영 작가의 단편 소설 7편을 읽으며 다른 세상을 누비고 온듯한 행복에 젖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공간에서 소설 속 주인공들과 함께 울고 웃고 위로를 받았다.


 작가는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어 보인다. 마치 독자가 소설 속 한 마을의 주민이 된 듯한 착각이 일만큼 섬세하고 구체적이다. 세상의 난폭함과 거친면들은 다른 차원으로 미뤄 놓고 주인공들의 행동과 표정에서 배경처럼 일렁이게 만든다.


*이글은 일부 소설의 결말을 포함한 요약문이다.

원작의 엄청난 흡입력을 느끼고자 한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1 쇼코의 미소


 7월, 한국으로 견학 온 일본 여고생 쇼코는 소유에게 명랑하게 인사했다. 부끄러워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부끄럽지 않은데 그냥 습관적으로 부끄러운 듯이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쇼코는 정말 우스워서 웃는 게 아니라, 공감을 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그냥 상대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았다. 쇼코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쇼코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내밀한 우정을 쌓는지 알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만날 필요가 없는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편지를 써서 보내는 방법으로 우정을 쌓았다. 만약 소유가 일본인이었고 쇼코의 주변에 사는 사람이었다면 쇼코는 소유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세월이 흘러 연락이 끊겼다. 소유는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쇼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소유는 쇼코에게 자신이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쇼코를 찾아 일본으로 갔을 때 쇼코가 지었던 예의 바른 웃음은 어렸을 때 지었던 것과 같은 웃음이었다. 차갑고 어른스러웠던 그 웃음에서 나약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읽었다. 쇼코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쇼코는 약했다. 소유는 이상한 우월감에 휩싸였다. 쇼코에게는 노인들 특유의 외로움이 있었다.


 당시 소유는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하고 영화판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던 때였다. 자신의 욕망이 친구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소유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연봉 많은 남자와 결혼한 친구를 속물이라 생각하고, 영혼을 잃어간다는 직장생활 친구들을 고소하다 생각하고, 그런 자신의 끔찍함에 놀랐고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비가 내리는 11월, 자취방을 찾아오신 외할아버지. 쇼코의 편지와 사진을 건네주었다. 과장해서 웃고 있는 사진 속 쇼코는 물리치료사가 되어있었다. 얼마 후 할아버지는 임종을 맞이하셨다. 영정 사진 앞에 놓아둘 사진 세 장을 고르는데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은 하나뿐이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쇼코였다.


...


2 씬짜오 씬짜오


 1995년 1월 독일 플라우엔이라는 작은 도시로 이사 온 한국인 가족과 베트남 가족의 이야기. 이념이 만들어 낸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자, 가해자가 되어 명분 없이 헤어지는 비극적 소설이다.


 엄마는 아빠와 경쟁적으로 서로를 무시하는 사이었지만 투이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가끔 서로를 보며 웃기도 했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하기도 했다. 엄마가 그렇게 잘 웃는 모습을 그전에도 그 후에도 보지 못했다. 엄마는 그때 참 예뻤다. 이민 와서 친구가 없었던 엄마에게 응웬 아줌마는 배관공을 부르거나 집주인과 이야기해야 할 때 나서서 일을 해결해줬다. 엄마가 사랑이 많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해주는 능력이 타고났으며, 아파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응웬 아줌마는 늘 칭찬했다. 아줌마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몰랐던 엄마의 좋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고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베트남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고 알고 있었던 나는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잔인하게 베트남 사람들을 죽인 사실을 투이네 집에서 부모님들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당신이 뭔데 미안하다고 말하냐며 자리를 떴다.


 "당신은 항상 이런 식이야, 죽어도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해, 안 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내가 아무리 상상하려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장소와 시간에 아줌마는 내몰려 있었다. 어차피 당신들은 이해하지 못하니까, 라는 마음이 그날 밤, 한국인 가족과 베트남 가족을 안전하게 갈라놓았다. 그건 서로를 미워하고 싶지도, 서로로 인해 더는 다치고 싶지도 않는 어른들의 평범한 선택이었다. 얼마 후 엄마는 반쯤 남은 립스틱과 파운데이션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고, 아끼던 투피스와 원피스를 의류수거함에 버렸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엄마는 그저 침묵했다. 밥을 몰아 먹었고 손끝이 빨개지도록 뜨개질을 했다. 아빠와 찍힌 사진들은 버려져 있었다. 엄마가 너무 멀리 있는 거 같았다. 더 멀리 가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그녀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자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앤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우울했었지.' 그제야 나는 엄마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던 응웬 아줌마를 떠올렸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지적하는 엄마의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을 섬세함으로, 특별한 정서적 능력으로 이해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줌마는 엄마의 인간적인 약점을 모두 다 알아보고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 곁을 줬다. 아줌마가 준 마음의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하게 돌보았을까. 그것이 엄마의 잘못도 아닌 일로 부서져버렸을 때 엄마가 느꼈던 절망은 얼마나 깊은 것이었을까. 엄마는 오래 외로웠던 사람이었기에...


3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식모로 들어온 사촌 언니(순애)는 엄마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 그런 이모가 공산주의 책을 읽고 라디오로 북의 방송을 들었다며 이모부와 함께 끌려가 종적을 감추었다. 살기 위해 가족들은 그녀를 마음에서 기억에서 버렸다.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었다.


 인간이 그 알량한 권력 때문에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죽일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차마 상상조차 못했던 엄마는 정의구현 사제단에서 배포한 선전문을 사무실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나라에 의해 살해되었다. 사형이 집행되고 나서야 엄마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고, 앞으로도 모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영원히 입을 다물었다. 세상의 단단함이, 상식으로는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그 단단한 벽이 엄마를 침묵하게 했다.


 순애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모는 지나간 일 년의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엄마도 묻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그런 태도가 서서히 그 사람들의 사이를 멀게 했고, 엄마의 생활이 안정되어갈수록 이모는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이모에게서 연락이 오면 냉정하게 대했다.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4 한지와 영주


 27살, 프랑스 시골 마을을 여행하던 영주는 한 수도원에서 일곱 달을 보내게 된다. 그중 한지와 함께 한 3개월의 시간은 아쉽고도 아름답다. 마치 내가 영주가 된 것처럼 한지를 사랑하게 되었다. 한지는 6월에 프랑스 수도원으로 와서 9월에 나이로비로 떠났다.


 한지는 언제나 자연스러웠다. 웃음도 표정도 자세도. 나이로비에서 수의사로 일하는 그는 고아가 된 코뿔소 하위와 글로리를 야생으로 되돌려 보내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야생으로 되돌려 보낼 때 뒤를 돌아보면서도 앞으로 가던 두 코뿔소 이야기에 한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주는 한지와 있을 때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지가 그 이야기들로 나를 판단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컸다. 한지에게는 몸이 볼 편한 동생 레아가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자신의 삶은 자신만의 삶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나의 일부는 언제나 나이로비에 있다고 했다. 그의 시선은 사진 속 레아에게 닿아 있었다. 한지의 오랜친구 카로는 그런 한지를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라고 했다. 모두와 잘 지내지만 절대 속을 알 수 없는 아이.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는 아이. 한없이 친절하지만 그게 끝이라는 거지. 반감이라기보다는 서운함이라고 해야 맞는 걸까? 그럼에도 이 둘의 이야기를 규정하고 있는 가장 현저한 정서는, 한지가 지니고 있는 탁월한 공감 능력이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이다. 그런 카로에게 영주는 한지를 조금이라도 덜 좋아했더라면 솔직하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한지가 코뿔소의 마음을 상상하듯, 한지의 마음을 상상한다고. 한지는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나를 그저 돌봐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지가 떠나기 2주 전, 한지는 대놓고 영주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영주는 멀리서 쓰레기를 치우는 한지를 바라봤다. 한 손엔 장갑을 끼고, 한 손엔 집게를 들고 있었다. 턱 밑으로 땀이 흘렀고 등을 굽힌 채 작업에 집중했다. 언젠가 한지를 잃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지는 이제 영주를 피하고 있고, 영주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건 한지를 괴롭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영주는 한지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 뒤, 영주는 한지와 냉장창고에서 마주친다. 영주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내가 없다는 것처럼 나가버리지 마."


이 말을 끝내고 한지의 얼굴을 봤다. 한지는 울고 있었다.


"네가 왜 이러는지 묻지 않을게."...."일주일 뒤에 너를 여기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걷다가도 눈물이 나. 이제 더 이상 너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없겠지. 한지. 제발 이렇게 내 인생에서 사라지지 마."

 ...


5 먼 곳에서 온 노래


 봄, 미진 선배가 있는 러시아로 간다. 십 년 만이다. 선배와는 노래패에서 만났고 러시아에 가기 직전까지 삼 년을 같이 살았다. 5월 축제기간 홈커밍데이가 끝나고 뒤풀이 날이었다.


 "형. 우리 학교 여자애들 보셨어요? 계집애들처럼 몰려다니면서 선배 보고 오빠라고 하질 않나. 우리 노래패도 단단하게 이끌어줄 남자애들이 안 들어와서 결국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나도 여자지만 여자애들 뭉칠 줄도 모르고 도무지 조직이라는 걸 이해 못 하잖아요." "나도 여자지만 사회에 나와보면 참 융화가 안 되는 여자들이 많아. 툭하면 삐지고 불평불만에 남자들은 안 그러거든.  네 선배니까 말해주는 거지 누가 너한테 이런 말 해주겠니?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 없으면 사회 나가서 욕먹는다, 너." 소은은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학번이 벼슬입니까?"


미진 선배였다. "김연숙 씨나 잘하세요. 여자인 게 그렇게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었어요? 여자들은 감정적이고, 분란 일으키고, 이기적이어서 조직 배반하기 쉽고, 여자의 적은 여자고, 그런 자기부정이 김연숙 씨가 말하는 건강함이었습니까? 여자 후배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선배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들고나갔다. 소은이 따라나가니 이미 선배는 로터리 쪽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선배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선배는 이상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웃는 게 아니라 우는 얼굴이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선배가 노래패의 학생운동 전통을 끊었다고 비난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엄격한 선후배 문화, 남학생 중심으로 운영되는 집행부, 상명하복식 문화에 미진은 하나하나 문제제기를 했고, 기존 구성원들은 그런 미진에게 질려버렸다. 미진이 동아리를 떠나 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고집불통에 독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던 미진도 고작 이십 대 초반이었다. 여러 사람의 미움을 견디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더라도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겠지. 자신을 지지하고 인정해주는 동료가 없는 내부에서의 투쟁이란 대체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까. 그날 로터리 횡단보도 앞에서 스물다섯 선배가 흘렸던 눈물은 분노가 아니라 그때까지 누적된 외로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쇼코의미소 #최은영 #소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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