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만화로 보는 삼국지 책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삼국지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에 읽는 바람에 그것이 역사를 최대한 반영한 <삼국지 정사>였는지 아니면 나관중이 쓴 역사 소설인 <삼국지 연의>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삼국지를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적벽대전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천하통일을 꿈꾸는 조조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전쟁을 일으켰다. 이에 대항하여 유비와 손권이 동맹을 맺고 병력을 모아서 양측이 장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이었다.
조조군이 100만 대군이라는 것은 유비와 손권을 겁주려고 부풀린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조조군은 대부분 육지에서 싸워왔던 보병이었고 손권의 병력은 노련한 수군이 주를 이루었고 유비의 병력은 보병으로 적벽에 주둔하는 중이었다. <삼국지>에서는 조조의 병사가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 비해서 몇 배는 더 많았으나 강에 대해서 잘 몰랐고 뱃멀미가 심했다. 이에 유비의 책사였던 방통이 조조에게 배와 배를 묶어서 싸우면 된다고 했다.
조조의 부하들이 배와 배끼리 묶으면 화공에 약하다고 반대했지만 조조는 바람의 방향이 반대로 불고 있기 때문에 불을 바탕으로 공격하는 화공에 크게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배와 배끼리 엮어서 진군했다. 제갈 공명이 바람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이 때문에 바람의 방향이 조조군 쪽으로 불리하게 불었고 그에 맞춰 손권과 유비군이 불화살을 퍼부었고 그 때문에 조조의 100만 대군의 대부분이 불에 타서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삼국지 만화를 보면서 그저 바람의 방향을 바꾼 제갈공명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른 후에 유튜브에서 침착맨님이 삼국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귀로 들으면서 눈으로는 교양 과학책을 읽고 있었는 데에 갑자기 제갈량이 하늘에 제를 올려서 바람의 방향을 바꾸어서 불화살이 조조군의 대부분을 섬멸했던 부분이 생각났다. 침착맨님이 이걸 언급했다는 게 아니라 삼국지와 과학을 우연히 동시에 생각하다 보니까 제갈량의 제사가 생각이 난 것이다.
그래서 적벽대전에 대해서 곰곰이 다시 생각을 해봤더니 바람이 하늘의 직속 부하도 아니고 또 제사를 올린다고 해서 무생물인 바람인 자연이 사람의 뜻을 헤아려서 힘의 크기는 비슷한데 방향만 바꾸어줄 리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랑 제사랑은 서로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머나먼 과거에 있었던 일이니까 약간 과장을 보탠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삼국지 정사와 삼국지 연의에서 둘 다 208년 장강의 적벽에서 펼쳐진 대전에서 여지없이 화공에 조조군이 패배했다고 하니까 바람이 유비군과 손권군을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도와줬다기보다는 자연에 의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는데 그것이 손권군과 유비군에게 유리한 작용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 바람의 방향이 유비와 손권에게 불리하게 불 때부터 방향이 바뀌어서 바람이 불 때까지 제갈공명이 지내던 제사는 시기가 겹쳤을 뿐일 것이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바람이 부는 것과 제갈공명의 제사는 서로 아무 인과관계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제갈량이 적벽에서 패배한 조조군의 퇴로를 미리 예상해서 조자룡이나 장비 그리고 관우 등의 장수들을 곳곳에 배치하거나 빈 배를 날씨가 좋지 않을 때에 조조 진영에 보내서 많은 양의 화살을 얻어오는 등 뛰어난 지략을 펼친 전략가임은 맞다. 그러니까 제사에 관한 이야기는 제갈량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 당시 시대에 적벽에는 과학이 많이 발전하지 않았었고 많은 동양의 학자들이 자연을 공부해서 하늘의 마음을 읽거나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영향으로 제갈공명도 악의 없이 진심으로 제사가 통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이는 제갈 공명이 장강의 적벽에 일 년 날씨를 알고 있어서 바람의 방향이 대강 어느 정도에 바뀌어서 부는지를 알아봤고 제사는 조조군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벌였던 행위였다고 주장한다. 그 사람이 바로 나다. 만일 장강의 일 년치 날씨 주기를 알아봤다는 게 사실이고 그걸 바탕으로 적벽대전에서 승리했다는 걸 보면 100만이나 되는 대군을 상대로 쉽게 항복하지 않은 손권과 유비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주유도 대단하지만 제갈량도 뛰어난 기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