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먹을 수 있지만 왜 뱉지는 못할까?

by 김기제

인간은 나이를 먹을 수 있지만 왜 뱉지는 못할까? 그 이유는 이 4차원의 시공간 안에서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만 향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현재에서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가능하지만 현재에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시간이 가는 방향 때문에 나이를 먹을 수는 있어도 뱉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나이도 이렇게 미래로 향하는 시간의 방향대로만 움직인다. 그래서 우주 안에 있는 우리는 시간의 법칙에 따라서 우주와 같이 나이를 먹는 것이다.


가역적이라는 물리 용어가 있다. 가역적이란 '물질의 상태가 한 번 바뀐 다음에 다시 본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비가역적이라는 단어도 있다.


비가역적이란 '주위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성장기를 지나 노화한다. 이를 비교하면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성장과 노화가 끝나고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물리 용어인 '비가역적'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즉, 물질의 상태가 한 번 바뀐 다음에 다시 본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인 상태가 바로 인간이 겪는 '과거'라는 시간이다. 그런 것을 따져서 곰곰이 생각해 볼 때에 인간이 태어나서 나이를 먹고 일정한 시간이 되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과거라는 비가역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은 가능한데 먹은 나이를 도로 뱉어내면서 어려지거나 태어나기 이전의 정자와 난자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시간이 한쪽 방향으로만 과거가 아닌 미래로만 향해 나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고 그러한 시간의 성질 안에 우리 인간이나 원자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우주 전체에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물리 법칙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한계 안에 머무는 것이 우주의 에너지와 원자의 특징이 아닐까?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가 변한다. 성장하고 노쇠하면서 미래로는 나아가도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이 가역적이 된다. 마치 사람의 몸이 다양한 원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본래라는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차라리 우리의 우주와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이 미래의 시간이 아닌 과거의 시간으로 그러니까 한 번 바뀐 다음에 바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역적인 상태로 되돌리는 게 가능하다면 우리는 우리가 먹었던 시간들을 토해내고 젊었던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주워들은 상대성 이론의 내용이 맞다면 시간 여행이 미래로 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과거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과 시간이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인 물리 현상은 열역학 2법칙과 비슷해 보인다. 사전을 따르자면 열역학 2법칙이란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을 규제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에너지의 흐름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법칙에 따라서 하나의 열원에서 열을 받아서 이것을 일로 바꾸되 그 외 어떤 외부의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열기관인 제2종 영구기관의 제작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제2종 영구기관은 100퍼센트 열을 받아서 100퍼센트 바꿀 수 있는 기관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 백과를 보고 이 부분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나도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열은 스스로 차가운 물체에서 뜨거운 물체로 옮겨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거나 뱉는 이야기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열역학 2법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열역학 2법칙이 엔트로피 법칙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엔트로피 법칙'이란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바뀌며 질서화한 것에서 무질서화한 것으로 변화하며 이는 곧 우주 전체의 에너지양은 일정한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가능한 에너지양은 점차 줄어드는 지구의 물리적 한계를 의미한다.


중간에 열역학 2법칙과 엔트로피 법칙이라는 복잡한 것들이 나왔지만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오직 한 방향만으로 바뀌면서 질서화한 것에서 무질서화한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 제4차원의 과거의 시공간은 질서화되어서 굳어버렸지만 아직 정해지지 않은 제4차원의 미래에 시공간은 무질서화가 되어있어서 무수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즉 과거는 바뀌지 않지만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매우 많은 미래의 가능성들이 열려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점심에 커피를 먹은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질서화된 과거라서 되돌릴 수 없지만 저녁에 커피를 먹을지 아니면 콜라를 먹을지 아니면 아예 먹지 않을지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무질서한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질서화된 과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가역 현상이 아닌 무질서화된 미래의 상태로 정해지지 않은 비가역 현상을 상상하다 보니까 나이를 먹는 것은 가능한데 먹은 나이를 다시 내뱉는 게 불가능한 거랑 엔트로피랑 연관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글을 쓰게 되었다.


어쨌든 가역 현상은 마찰이나 공기 저항이 없는 매우 이성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 현상은 대부분 한쪽 방향으로 일어나는 비가역적인 상황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몸이 노화가 되는 이유는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도 비가역적이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이 실내에서 신체 활동을 덜 하는 근무보다 외부 환경에 의해서 신체활동과 변화가 많은 야외 근무를 하는 사람의 피부가 자외선 따위로 더 노쇠화는 것과 같이 (예시가 틀릴 수도 있지만) 야외 근무를 하는 막노동이 비가역적 현상을 더 빨리 증가시키고 상대적으로 야외 근무나 몸을 혹사시켜 가면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덜 비가역적인 작용을 일으켜 피부가 상대적으로 덜 늙는 것처럼 말이다.


완벽히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는 가역적인 삶을 살 수는 없어서 노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신체가 시간을 거슬러서 더 젊은 피부로 돌아갈 수 없고 나이를 먹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신체에서 비가역적인 현상을 늦추는 일은 정신과 신체에 피로가 심각하게 누적되는 일을 피하거나 아니면 비가역적인 신체의 활동을 느리게 하거나 혹은 신체의 나이를 이론대로는 영생을 사는 것이 가능한 홍해 해파리처럼 신체의 성장과 노화가 반복되는 방법을 개발하게 된다면 그렇지 않은 상황이 젊음을 더 길게 누리거나 수명 자체를 연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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