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영역을 절반으로 줄이다.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by 김기제
AI Grok이 만들어 준 이미지.


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도전했던 분야가 몇 개냐고 물어보면 4개라고 말할 것이다. 또 질문이 이어져서 그 영역들이 무엇, 무엇이었는지를 키워드로 물어본다면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피팅 모델, 물리학도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이 활동 영역을 늘려가다 보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많아지지만... 날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사람이 한 가지 영역에서 장기간 활동하다 보면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 약 100명을 만나게 되는데 - 그중에는 나랑 안 맞는 사람도 있고 맞는 사람도 있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날 처음에 좋아했다가 싫어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 싫어했다가 좋아하게 되는 사람도 있어서 세상에 영원한 아군도, 평생의 숙적도 없는 것 같다.


4개의 직업을 겪어보면서 내가 느낀 점은 한 사람이 한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자기 할 일을 해내가는 동안에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약 100명이 된다고 가정하면 나는 4개의 직업을 겪어봤으니 보통 사람의 네 배가 되는 사람들을 만나본 셈이다.


그러면 날 싫어하는 사람도 네 배가 많아지고, 좋아해 주는 사람도 네 배 많아진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네 배를 더 칭찬받고, 네 배를 더 비판받는다. 직업을 여러 개 가진다는 건 그만큼 책임감이 더 커짐을 뜻한다. 이 이야기를 이 시기에 하는 이유는 한때 내가 활동하는 모든 영역에서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람들을 상처 주고 밀어내기도 했다. 수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에 인과응보를 겪었다. 내가 잘못한 점들이 분명 무수히 많지만 나름대로 억울함도 많았다. 책임감이 네 배 커질수록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생각해서 숨이 막혀왔고 불안과 공황이 찾아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그러다가 불교와 관련된 서적들을 읽고 반성하고 무례와 피해를 끼친 이들에게 사과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책임감을 줄이기 위해서 나는 내가 활동하는 영역을 절반 줄였다. 첫 번째로 포기한 건 피팅 모델, 즉 패션의 영역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얼마나 이 직업을 놓아주었느냐면 여러 사람들에게 '예전에는 꾸미고 다녀서 보기 좋았는데 이제는 패션 좀 신경 써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패션 화보도 읽지 않고 단골 옷 가게에 새로운 옷이 들어와도 찾아가지 않았으며 머리에 더 이상 스프레이나 젤을 바르지 않았다. 머리도 투블록 컷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 나를 걱정해서 패션 충고를 해주는 이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에 따라 불안 증세와 공황이 오는 주기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포기한 직업은 물리학도다. 학생을, 만학도를 직업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문제는 있지만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직업이었다. 몇 년간을 하루에 60분에서 90분은 꾸준히 물리 공부를 했다. 브런치 서버에 저장된 나머지 나의 글들에도 무수히 언급했지만 물리학은 과학만 공부한다고 완성되는 학문이 아니라 수학도 공부해야 하는 학문이다.


초등학교 수학에서부터 수능 수학을 거쳐서 대학교 물리학과 1~2학년에서 다루는 고등 수학까지 기본으로 알고 그다음에 과학 이론을 공부해야 하는 길이 물리학도의 길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반에서 알아주는 꼴찌였다. 나중에 성적이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국어와 영어 그리고 교양 분야 쪽에서의 상승이었고 특히 수학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등장한 분수에서부터 포기했다.


수학으로 반에서 꼴찌를 한 적도 있는 사람으로서 수학보다 과학 이론 중에 과학 이론이나 과학의 역사를 먼저 공부하는 건 내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수학이 없어도 물리학을 이해하고 말겠어라는 고집으로 수년의 시간을 낭비했고 수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서는 초등학교 수학부터 다시 손을 봐야 했다.


그런데 대학교 수리물리학에서 반변 벡터나 공변 벡터 그리고 아인슈타인 텐서 같은 것들을 만나면서 또 수학적인 정의와 물리 공식들을 외우는 데에 결국 실패하면서 이 분야를 포기했다. 어머니께서는 세종대왕님께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을 백 번을 공부하셔서 학업 성취를 이루셨다고 너도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해주셔서 나도 이종필 교수님의 <일반인을 위한 일반상대성이론> 강의를 세네 번 반복해서 들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내가 세종대왕님이 아니라는 것만 더 명확히 깨닫게 될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어디까지나 나의 경우에 한해서 수익이 없지만 나에게 큰 힘이 되는 두 직업만 남겨두고 피팅 모델과 물리학도라는 영역을 버렸다. 어떻게 보면 두 번의 실패를 겪은 셈이고 이걸 글로 적어서 만천하에 공개해 버린 셈이다. 더 이상 이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다짐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하지만 처음 활동하던 4가지의 영역 중에 2개를 포기해서 책임감이 절반이 줄어들었고 내 그릇의 크기를 깨닫고 에너지를 아끼며 나머지 직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꿈꾸는 나'와 '진짜 현실에서의 나' 사이의 간격을 많이 줄여서, 즉 집착 두 개를 버려서 성장 아닌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절반의 장점이 날아갔지만- 그만큼의 단점도 따라서 사라졌으니 비록 활동 영역을 반으로 줄였지만 실속있는... 앞으로의 나의 모습을 기대해 줬으면 좋겠다.


※ 이미 연재 중인 브런치북에 해당 본문을 첨부해서 발행했어야 했는데 실수로 일반 발행되어 다시 재발행합니다. 많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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