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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병동 1인실

151병동에서

무균실에서 올라 오던날을 기억한다.

남편을 정확하게 본 날이다.

나는 그동안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다 남편을 본 순간 처음으로 울기 시작 하였다.

남편 손을 붙잡고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손을 놓치면 죽을것 같은 무서움이 밀려 왔기 때문이다.

변화된게 있다면 난 수술전 보다 수술후 오히려 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인실로 올라오고 나서 부터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식구들과 함께 있다는 든든함이 회복하는데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준것 같았다.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딱 두 가지만 잘하면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바로 운동과 잘먹는것 이었다.

들어보면 굉장히 당연하고 단순한 말 같지만 그 일을 실제로 실행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적잖게 있었다.


우선 먹는일

뭐랄까?

첫아이 임신했을때 입덧이 너무 심해 밥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했었는데

바로 그 느낌,

마치 배멀미같이 끊임없이 울렁거리는...

음식을 앞에 놓고 많이도 울었다.

한번은 엄마가 식판을 던지고 울면서 병실을 나가버린적도 있었다.

나는 식욕촉진제를 처방 받고도 밥만 보면 구역질이 났다.

부모님 생각, 아이들 생각 해서라도 먹어야하는데 도저히 먹을수가 없었다.

그 증상이 입퇴원을 반복하며 일 년여 동안 지속 되었다.


운동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운동을 해야 했는데 몸을 움직이기가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수술후 처음 혼자서 일어났던날을 기억한다.

나는 151병동을 매일같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사실 병동에서 할 수 있는일은 많이 없다)

어떤날은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 일어나지 못하는 날도 있었으나 나는 될 수 있으면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퇴원후 폐렴이와 응급으로 입원하였을때 큰시누가 병문안을 왔었는데 내가 약기운에 취해 횡설수설 비몽사몽 하면서도 갑자기 일어나서 운동을 해야 한다며 폴대를 밀겠다 우겼다고 한다. 교수님이 운동해야 살 수 있다고 했다면서 말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운동이 살아남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입퇴원을 반복하며 151병동은 나에게 굉장히 친숙해 졌다.

매일 편의점에 폴대를 밀고 운동삼아 다녀오는게 유일한 외출이었다.

아는 지인이나 가족들이 면회를 오면 그 날은 하루가 좀 일찍 갔고

그 외의 날은 창밖을 바라보며 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시절에는 그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지금은 나도 그 거리에서 걷는 평범한 한사람이 되었다


그 시절 병원에서의 하루는 너무 길어서 사람을 많이 지치고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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