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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배

선배도 언제 어디서나 항상 행복하기를 ...

병세가 악화 되어 집안에서 조차 돌아 다니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을 즈음 이었다.

남편과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날

모르는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찍혔다.

남편이 깰까봐 거실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내가 대학교 3학년때 군대 제대후 복학해서 같은 해에 함께 졸업했던 선배였다.

대학졸업후 10여년이 지난 후 였지만 목소리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짝사랑했던 선배였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좋아 했지만 그 선배도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몽글몽글 했던 그 시절...

우리는 서로 좋아했었다.

버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치일까봐 손 잡아 주고

햇빛이 뜨겁다며 자기 겉옷을 벗어 가려주던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빠때문에 지레 겁먹고 만남을 포기 했었다.

집앞에 찾아와서 전화해도 만나주지 않고 졸업할때까지 피해 다녔다.


그런데 그 선배가 10여년이나 지난 그 저녁에 술 한잔을 걸치고 전화한 것이다.

(내 전화번호는 후배에게 물었다고 했다)

서로 이런 저런 일상 안부를 묻고 나는 어렵게 입을 열어

그 옛날 내내 마음의 빚으로 지니고 있었던

그때의 나의 어른스럽지 못했던..

상처주었던 그 많은 행동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 했다.

선배는 유쾌하게 내 사과를 받아 주었고 동시에 진심으로 나의 행복도 빌어 주었다.

(나는 나의 병에 관해 동창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당연히 그도 알지 못했다)


그와 통화를 마친 후 그 밤 내내 나는 많이도 울었다.

어린 시절 남녀의 감정...........그런건 그도 없고 나도 없었다.

단지 한참 풋풋하고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강을 지나,

서로에게 행복을 빌어주는 선배와 후배만 존재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리도 울었을까?

꼭 행복하라는 그의 말과는 완전히 상반된,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의 이 상황이

참담하고 황당하고 또 너무나 안쓰러워서..

그래서 울었다.

잠못 이루고 내내 울던 그 날의 밤을 기억한다.



그 전화를 받고 열흘 후 나는 수술을 하였다.

그리고 시간은 더뎠으나 마침내 건강을 회복하였고, 지금은 그 선배의 바램대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 밤 느닷없이 전화하여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준 그도 항상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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