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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나의 폐기능과 바꾼 아들

딸아이를 낳고 8년만에 어렵게 아이를 가졌다.

남편은 1남2녀중 집안의 장손이며, 맏아들이었다.

시부모님은 딸하나를 낳고 아무 소식이 없는 나에게 대놓고 말씀은 안하셨지만

뒤돌아서는 남편에게 은근 걱정과 우려가 많으셨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육아의 난이도가 높았던 큰아이 생각에 한동안 아이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었고

다시 그 상황이 반복된다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 했었다.


그랬던 내가 다시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건 오로지 시부모님의 공이 지대 했다.

5년이 넘어가고 6년이 지나가니 집안의 대를 끊어놓는다는 시부모님의 압박과 재촉이 결국 승리 하였고

어느새 나는 자연스럽게 산부인과 문턱을 드나들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가지려니 그게 생각만큼 호락호락 하지는 않았다.

8년만에 둘째아이를 가지게 되고, 낳은 아이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댁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그렇게 아들은 나에게 천사처럼 찾아와 주었다.

이 아이를 생각하면 나는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난다.

자라면서 아들은 항상 걷는법이 없었다. 뛰어 갔다가 뛰어 왔다.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몸이 아픈 가운데 아이를 양육 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그 아이가 나에게 가져다 준 기쁨은 말 할수 없이 소중했다.


그런 아이가 어느새 고3이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살아 있는게 소원 이었던 내가 어느덧 기적처럼 고3 학부모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아들은 너무 자라서 그 때 처럼 뛰지 않는 진중한 청소년이 되었지만

내 눈에는 그저 아직도 챙겨주어야만 하는 어리고 여린 작은 아이로 보인다.


사실 나의 병은 여성호르몬과 관련이 있어서 출산을 하면 병이 급속히 진행 된다고 하는데

그때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채 아들을 낳았고,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육아를 해야 했으나

그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지금까지 볼 수 있는것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며 살고 있다.


며칠전 새벽 곤히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만지는게 느껴져서 실눈을 뜨고 보니

아들이 내 옆에 와 있었다. 아마도 자다가 꿈을 깨서 온 것 같다.

잠결에 왜? 하고 물어 보니

"엄마 나는 가끔 엄마가 일찍 죽을까봐 너무 무서워"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는 항상 밝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엄마의 건강을 아직도 많이 우려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 온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의무적으로라도 항상 건강해야 겠다.


아들아!!!

엄마아빠의 바람대로 건강하게 잘 자라나고 있으니 이제 더욱더 가열차게, 날이가고 해가 갈수록, 속사람도 멋진 좋은 남자로 열심히 성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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