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구와 의료봉사 현장에 함께 하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해마다 의료봉사로 지역 어르신들을 섬기는데
나도 함께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으나,
몸이 약해 다른 사람들에게 오히려 민폐만 끼치게 될까 염려 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딸아이와 함께 시도해 보자 마음먹고 어렵게 신청하게 되었다.
딸아이는 간호팀에, 아무 재능도 없는 나는 지원팀에 속했고
나는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어르신들에게 포장된 선물을 나눠주는 역할을 맡았다.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품이 좀 들어갔다.
언제 나오실지 모르니 자리를 이탈할 수 없었고 오후에는 햇빛이 뜨거워 덥기까지 했다.
그러나 바람은 시원하게 불었고 하늘도 파랬던 청명한 날이었다.
무엇보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 따뜻해지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진료를 마치고 그냥 가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내 옆에 앉아서 한참 이야기를 하시다 가시는 분들이
더러 계셨는데, 하시는 말씀은 거의 비슷하게 자식들 이야기였다.
거기 앉아서 잠자코 하시는 말씀들을 듣다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은 그분들이 살아왔던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편리해지고 살기 좋아졌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평생을 논일, 밭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자식들을 키워냈으며, 시부모의 병수발까지...
나라면 해낼 수 있었을까? 감히 생각만 해 본다.
한 어르신은 농한기마다 다섯 자녀를 놓아두고 남편과 함께 대도시에 나가 현장일을 했으며
두어달씩 일하고 받아온 돈을 모아 다섯자녀 모두 대학 공부를 시켰다.
자식들에게 온힘을 쏟아붓고 잘풀린 자식들 자랑을 한참 하시다가 투박한 손으로 선물을 받아들고
돌아서는 어르신을 보며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위대하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4시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록 나의 정신과 육체는 너덜너덜해졌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나 글을 쓰고 있는 다음날의 나는 몸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
얼굴은 붓고 몸 여기저기 안쑤시는 곳이 없다.
나는 진정 유리 인간이 맞나 보다.
이런 나에게 남편이 쓱 지나가며 한소리를 한다.
"의료봉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쯪..."
묵직한 한 방이 내 뒤통수를 때린다.
아프지말자! 그래야 내년에 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