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등
산등성 업고 사느라 힘들었어
허공 찢고 새순 올리던 날
고삿 너머 비린 어둠은
시냇물 허리에 길게 파묻혔지
남들은 단박 알지만 한 번도 못 본 곳
삶의 둔덕마다 흥건히 고여 드는 둥근 땅
가벼운 날개깃 달았던 내 몸의 민낯
천길 벼랑 날마다 그 곳에 쌓였지
붉은 세월의 꽃씨
다 발라내니 구름이 발아래라
어느 여름날 밀양강 부근으로 나들이를 갔다 나들이라야 특별할 것 없이 마음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강둑을 걷거나 새로운 마을을 걸어서 한바퀴돌면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마당에는 무얼 심고 가꾸는지 누가 사는지 어떤 나무를 키우는지 그냥 그냥 걸어가는 것이었다 별다른 관심이라기 보다는 사람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을 즐기는 편이다
간혹 차를 마시러 들어오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저런 식재료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힘들어 하는 밭일을 살짝 돕기도 하면서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의 사람을 누리곤 했다
그날은 밀양강 강둑을 걸어가는 중이었는데, 할미꽃 군락지를 만났다 검붉은 할미꽃이 고개를 숙이고 하얀 털에 쌓여 있고 더러는 하얀 머리칼을 지닌 할머니 머리처럼 씨를 품고 있었다 시내에서야 한분에 얼마씩 주고 산 할미꽃을 이렇게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야생초들은 잘 적응을 하지 못해서 집에 데려가도 살 확률이 낮다 그리고 걷기에 전념한 터라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아마도 그씨앗들이 날려 지금즘은 더 많은 무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찾을 즈음이면 할미꽃 씨앗들이 아주 멀리까지 잘 퍼져서 온 강둑이 할미꽃으로 덮였으면 좋겠다 가끔씩 강둑에서 내가 아는 야생초를 만나면 먼 곳에 있는 친한 친구를 만난듯이 마음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