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한 기억이 선택한 장소
기억을 소환할 경우 우리는 알게 모르게 현재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서 이를 재구성하게 된다 대부분의 과거는 자신의 거울이며 현재는 과거였던 바의 것이라 말하는 K. Jaspers의 언급처럼 자신이 주체가 되어 경험한 과거가 모인 것이 바로 현재의 삶을 구성하기에 과거와 현재는 매순간 이어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사실이 온전하게 현재에 소환되는 것은 아니며 현재 소환한 과거의 기억은 과거의 사실과 전혀 다른 것 또한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자신의 기억을 회상하고 과거의 상황을 불러내지만 그것은 언제나 과거의 사실 그대로가 아니며 장소 또한 과거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대로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기억의 부족에서 온다기보다는 주로 현재의 자신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과거의 기억을 재편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에 소환된 과거는 실존 했던 과거의 사실과는 차이가 나며 소환된 기억들은 변화된 기억으로 재구성되어 현재의 뇌에 다시 저장된다
기억을 현재에 불러들이는 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과거의 기억은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 점은 사마천의 말(述往事 知來者)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지나간 일을 통해 다가올 일을 짐작한다
즉 기술된 과거의 시각으로 현재를 판단하고 이를 적용하여 다시 미래를 예측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과거의 사실에서 얻는 소중한 자료이지만 기록하는 자의 판단에 따라 사실은 변용될 수 있는 어리석음도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특정힌 기억의 어느 장소를 택하고 이를 현재의 세상에 불러들여 소통하게 되는데 이 경우 사실 그대로의 과거가 현재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순간 현재 속에서 변화되고 이를 매개로 미래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장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기억 속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억은 과거 현재 미래와 단단히 엮여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본고에서는 시에서 특별한 상황과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 ‘장소’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소와 공간의 개념에 대한 간략한 정의가 필요하다
공간과 장소는 물리적으로는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장소는 대체로 전면에 드러나며 경험과 생활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한편 정지된 곳으로 안정과 안전을 의미한다 반면 공간은 후면에 놓이며 비교적 추상적이며, 개방성 자유 위협과 같은 움직임이 일어나는 변화와 돌발 상황을 지닌 곳이다
말하자면 어떤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는 순간 그곳은 장소의 개념으로 변화된다(Tuan 1977) 이 장소는 어떤 사람과 시간을 얼마나 함께 공유하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서 기존의 물리적 지점에 부여된 공간은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장소로 바뀌면서 특정한 의미를 갖게 되고, 동시에 단순히 공간을 지칭하는 의미에서 벗어나게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장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 가지는 사회에 맞춰진 형태로 지적 획일성에 맞춰진 타자지향적인 장소로 관광지나 상품화된 곳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철저히 개인의 기억과 삶 속에서만 존재하며 개인적 기억으로 의미화 되지만 획일화 되지 않는 특징을 지니며 자아 지향적이며 주관적인 채로 존재하는데 이 때문에 누구나가 다른 장소에 관한 특징적 성향을 지닌다. 본고에서 다루려는 ‘장소’는 주로 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