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규 「짚베개의 시」

by 김지숙 작가의 집

김석규 「짚베개의 시」



삼동 내내 호롱불 심지 매캐한 끄으름에

코밑까지도 새까매지는 사랑방

상머슴 애기머슴 꼴머슴 차례대로 앉아

새끼를 꼬고 짚세기를 삼거나

멱서리 멱둥구리 꼴망태를 엮기도 한다

담배내기 화투판이라도 벌어지는 밤이면

꽃머슴은 기침을 하며 연초맛을 배우고

함밤중에 두부집 가는 일부터

주막의 술심부름 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사흘들이 눈 내려 불 밝히지 않아도 환한데

바람 자는 대숲에선 부엉이 자주 울고

가끔은 길 잃은 노루가 내려와 헤맬 때

동네 개들 모두 나와 짖어대고

첫닭 홰 치고 나서도 이끈 있다

차례로 얼음 낀 오줌 구유에 소피보고 와서야

제 저금의 짚베개를 베고 잠드는 사랑방

-김석규 「짚베개의 시」전문




귀소 본능은 행복과 생존을 위해서 혹은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본능에 해당된다. 큰뒷부리도요 연어 개미 애기뿔소똥구리와 같은 동물들은 냄새나 태양을 나침판 삼아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원초적인 귀소본능을 지닌다. 인간에게도 이러한 귀소본능은 있다. 이는 어린 시절의 편안함을 나타내는 한편 끈끈한 가족 간의 유대감을 드러내는 고향이자 보금자리로 되돌아가려는 귀소적 욕망에서 그 누구도 쉽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도적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기도 하고 애써 좋은 기억으로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추억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과거의 사실에 대한 기억의 소환이라는 점을 두고 볼 때, 과거의 일들을 긍정적으로 떠올리는 무드셀라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라는 심리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좋은 기억만 가지려는 이 심리는 나이가 들어 현재의 삶에서 만족이 쉽지 않아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큰 구약성서에서 969세까지 산 에녹의 아들 무드셀라에서 가져왔다 나쁜 일은 하나도 기억남이 없고 그 나쁜 일들조차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수정 변형하여 저장하기도 한다.

시에서 화자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과 사랑방이라는 장소를 통해 보여준다. 화자에게 고향은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 생명의 뿌리이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이는 유년기를 돌이키는 과정에서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좋은 기억과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추억의 장소들을 통해 표현된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고향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화자 역시 그러한 삶 속에서 힘들고 지칠 때에 위로와 치유를 받기 위해서 고향을 찾게 된다. 그래서 화자는 유년기에 자신을 품어주고 키워주었던 안락함을 느낀 ‘사랑방’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과거의 사소하지만 따뜻한 사실들을 떠올리고 그곳에서 누렸던 평화와 안온함을 그리워하며 어릴 적 고향을 찾으려는 귀소본능을 드러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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