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희 「거북이」

by 김지숙 작가의 집

이춘희 「거북이」



섬찟했다

진흙색 땅에 납짝 엎드려

토마토를 베어먹는 거북이를 보았다

손바닥만한 몸뚱이 꿈틀꿈틀

늙은 수도사 베일 벗기듯

천천히 고개 돌려 나를 바라본다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한 그 눈빛

순하고 검은 큰 눈동자

어쩌다 여기에 왔을까

배고픔, 외로움이 무한정 쌓인 눈빛

축 늘어진 입에서 계속 날름거리는 혓바닥

토마토 붉은 물 주룩주룩 흐르고

큰 소리라도 한번 지르면

덜 가련해 보이련만

한 공기의 밥 아랫목에 묻어두고

고개 한번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사신

쓸쓸한 어머니 얼굴 떠오른다.

밥을 먹는 것처럼 신성한 행위 또 어디 있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마침표가 가까운

번쩍거리는 슬픔

커다란 나뭇잎으로 덮어 주었지

-이춘희 「거북이」전문





로크(Locke)에서 러셀(Russell)에 이르면, ‘사실’은 감각적인 인상과 마찬가지로 외부에서부터 관찰자에게로 부딪쳐 오는 것이 된다. 이는 관찰자의 의식과는 별개이지만 관찰을 바탕으로 한 여러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자 구체적 개념 아래 성립된다. 따라서 그의 견해대로라면 ‘사실’은 사회 현상에 대한 작은 시선에서 비롯될 수 있으며 또한 자연 현상에 대한 사소한 관찰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래서 철학적 의미에서 ‘사실’은 실제로 일어났거나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가리킨다. 이는 진정으로 발생한 세상의 일에 대한 진술로 세계가 존재했던 혹은 존재하는 사태 자체에 의해 참과 거짓이 결정될 뿐 우리가 그에 대한 어떤 믿음을 가지는 지와는 무관하다. 그래서 ‘사실’이란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참이나 믿을만한 것으로 확립된 내용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의 경우, 현재는 ‘사실’이지만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으며 앞서 언급된 ‘사실’과 달리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시의 화자는 토마토를 먹는 거북을 작고 정교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화자는 장소에 대한 불분명한 상황이지만 거북과 한공간 내에서 꽤 가까운 거리에 있다. 화자가 거북을 바라보고 거북은 먹이를 먹다가 화자를 바라보며 거북의 눈빛과 마주치면서 생각에 잠긴다. 우리는 각자가 다른 문화 속에서 순간순간 각자의 마음대로 바라보는 사물과 더불어 사유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SNS의 발달로 더욱 다양화 되어가는 삶의 양상을 낳는다. 우리의 삶 속에서 접하는 ‘사실’은 명확한 경우보다는 종종 믿을 만한 정보와 내용으로 판단된 ‘사실’일 경우가 더욱 자주 있다. 화자가 거북과 눈빛 교환 과정에서 공감을 갖는 가운데 화자는 먹는 행위가 신성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거북이 목을 아래로 깊이 떨 군 모습에서 어릴 적 쓸쓸한 어머니의 모습을 겹쳐 떠올린다.

거북의 눈빛과 어머니의 눈빛에서 읽은 ‘기다림’ 혹은 ‘쓸쓸함’이라는 공통점을 들어 과거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방안에서 밥 한 그릇을 아랫목에 묻어두고 누군가를 기다린 기억을 되새긴다. 식구 중 누구를 위한 밥인지 짐작 불가능한 밥 한 그릇이지만 식지 않기를 바라는 정성을 담는 어머니의 모습을 소환하고 이 과거의 사실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재의 화자가 살아가는 삶 속으로 곧바로 들어온다. 그리고 화자는 눈앞의 사실을 매개로 추억 속의 장소에 존재하는 사실의 공통점을 찾게 되고 어머니와 거북의 ‘반짝거리는 슬픔’이 담긴 눈빛을 공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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