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욱 「층층나무」
울진 금강소나무숲에 갔다가
거기 층층나무를 보았지요
나뭇가지가 층층이 돋아난다고
이름도 재미나게 층층나무라 한다는데
문득 이 나무를 올려다보니
무수히 돋은 작은 이파리들이
지난날 그리움의 조각인 양 아득하게
매달려 있지 않겠어요
나는 왠지 처음 본 층층나무가 맘에 와 닿아
그 나무 그늘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돌아왔지요
내 기억의 포충망에 층층이 내걸린
-바람개비 소나기 조약돌 단발머리 그 애 무지개 할머니 하
얀 눈…
아스라한 유년의 그 층층나무
-주영욱 「층층나무」전문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고 또 상상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 경험은 우리가 사는 공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한 개인은 구체적 생활공간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살다가 홀연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이 갖는 문화적 특성은 삶을 포함한 장소에서 출현되고 발전하므로 주변을 포함한 삶은 언제나 인간의 삶과 밀접한 영향관계에 놓인 장소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누구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정한 시간과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의 성장과정 중 스쳐 지나가는 고향에 대해 느끼는 서정에서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기억 등의 의미가 함축적으로 드러난 점은 충분히 예견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고향이라는 공간 중에서도 자신의 추억이 서려 있는 특수한 장소가 기억에 남는다. 이는 자신과의 긴밀도를 알 수 있는 동시에 정체성을 형성하고 존재성의 뿌리가 내려져 있는 삶의 기본적인 가치관이 정립되는 시초가 바로 장소인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억의 소환으로 상실된 장소를 떠올리는 과정에서 장소에 대한 긍정적 추억을 회복하거나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우리는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힘들어 하고 잊지 않으려고 순간순간 과거의 일들을 반복하며 곱씹기도 한다.
시의 화자는 울진의 소나무 숲에 가서 층층나무를 보게 된다. 화자의 눈에 층층나무는 과거의 추억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과거를 되뇌는 순간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과거는 살아나서 현재에 존재한다. 다시 살아난 과거 덕분에 눈앞에 놓인 자신을 포함한 현재의 시공간은 사라진다. 과거는 희미할수록 현재에 잘 용해되어 현재의 자신을 이루고 있다 즉, 기억되지 않는 과거는 이미 현재화 되지 않고 사라진 것이다 지나치게 기억해 내야 할 것이 많은 과거는 객관적 사실의 과거로 남아있지 않고 여전히 현재의 연장선상에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화자는 층층나무를 보며 ‘단발머리 그 애’ ‘할머니’와 함께 떠올리며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 그때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하며 내면 깊이 잠겨들게 된다. 누구나에게 회상은 자신만의 독자성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동시에 과거의 자신과 공감 화해 이해하기 위한 의식을 강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마침 화자는 층층나무가 있는 공간에서 과거의 자신과 만나고 그때의 자신이 만나고 싶었던 과거의 장소를 소환한다. 따라서 층층나무를 바라보는 장소에서 언제든 소환되는 과거의 사실들을 통해 기억의 층층으로 내려가 과거의 자신이 경험했던 유쾌한 사람들과의 만나 연계감을 증진시키고 이로써 현재의 자신도 과거의 사실로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