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편지
적어도30-40년 전쯤에
유행하던 행운의 편지를
아직도 쓰고 보내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편지가 아니라
요행을 바라고 쓰지 않으면 찝찝한 마음이 드는
의무감에 덩달아 써야 하는 써야 하는
읽고 쓰지 않으면 정말 불쾌감을 떨칠 수 없는
무슨 생각을 하며 쓸지 고민하게 만드는
힘들게 하는 편지를 부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편지란 서로 너무 잘 알거나 잘 알고 싶은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고 스팸이란 무작위로 보내는 글이 아닐까 대량으로 전송되는 상대가 요청하지 않은 모든 형태의 통신 중에 행운의 편지도 이에 속하지 않을까
상대가 누군지 밝히지 않고 누군지도 모르는 채 덥석 받게 되는 일종의 스팸편지이다 읽지는 않았지만 다 읽고 나서 나도 누구에겐가 써 보내지 않으면 정말 찝찝한 내용들을 담고 있을 것 같아서 이런 걸 보내는 사람의 심리가 참 달갑지도 고맙지도 않다
편지란 바람에 날리는 장미꽃잎이라든가 허공을 떠도는 벚꽃잎이라든가 아니면 비내리는 날 벼랑에 홀로핀 수국이라든다 뭔가 마음을 적시든가 따뜻하든가 아련하든가 촉촉하든가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글들로 가득찬 편지를 띄운다는 것이 어떤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참 궁금하다
예전에는 펜글씨로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커피향을 느끼면서 어둠 속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친구에게 또 연인이 생기면서 편지를 쓰는 대상이 늘어 편지를 쓴 적이 있다 긴 밤을 새워 적고 나서 아침에 부치기 위해 다시 읽으면 지나치게 감성적인 면이 있어 버리기 일쑤였던 적도 있었다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사랑도 밤이면 어둠의 깊이가 더해져서 농도가 지나치게 짙어져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래도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쓰고나서는 찢고 또 쓰고 하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런 일들이 내 마음에 일어나지 않는다 편지를 쓰던 사람과는 문자와 전화를 하고 살아간다
영혼을 갈아넣고 마음을 다해 정성껏 써 내려간 편지를 주고 받던 사람들과 지금도 여전히 소통하고 오가며 지낸다는 것은 젊은 시절의 날들을 헛되지 않게 보냈다고 말해도 될 지모르겠다 가끔씩 전화를 하면서 우리는 대체 그때 뭘 고민했던거야 지금은 무슨 말들을 하면서 청춘을 보낸건지 통 생각도 나지 않지만 열심히 주고 받았다는 것만 기억난다
아마도 아직도 수중에 남아 있는 몇몇 편지를 세월을 건너 다시 읽는다면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날들이 지나고 보면 소중했다는 생각이다 문득 우체통에 꽂힌 한통의 편지를 보면서 편지에 대한 무수한 생각들이 떠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