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나무

by 김지숙 작가의 집

비와 나무



비가 내리면 온 세상이 젖는다

우산을 들면 맞지 않기도 하고

우산을 들어도 맞기도 한다


숲 한가운데 멍석말이로 누워

비 맞은 저 마음은 늘 차갑다


그래도 거기서 새싹을 내고

남은 몸집을 키우고 키가 자란다


때로는 아픔만큼 점점 더 단단한

쓰러진 나무를 본다




비가 내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몸이 젖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라보는 물이나 비나 강이나 바다나 계곡 개울을 정말 좋아한다 조금 떨어져서 이들을 바라노라면 어느새 시간을 잊고 흐르는 물소리에 모든 것을 잊는다

인생도 물과 같아서 그 속으로 들어가면 이런저런 일로 마음을 다치고 떠나지만 그래도 결국은 그런 일들로 점점 마음이 자라고 마음에도 강이 흐르는 경지에 이른 것 아닐까

밤새 비가 내린다 빗소리 천둥소리에 잠이 깨고는 다시 잠들 수 없어 귓가에 들리는 비 내리는 6월의 새벽에 세상의 모든 것이 젖어드는 광경을 본다

비가 내리면 새가 울지 않는다는데 숲에서는 비가 내려도 새소리가 들린다 둥지가 젖어서일까 천둥번개소리에 놀라서일까 알 수는 없지만 가끔씩 들리는 새소리 새의 마음은 알 길 없다

비가 내리면 이곳저곳에 쓰러진 나무들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뿌리를 다 드러낸 나무들이 아주 일부만 땅에 닿아 연명하고 있다 나무 한그루가 크게 자라기 위해서는 수십 년의 세월이 걸린다 이곳 숲에는 비바람 천둥 번개가 지나가면 꽤 큰 나무들이 툭툭 쓰러진다 아무도 세워주려고 하지 않는다 내게 힘이 있다면 다시 세워 꼭꼭 묻어주고 싶다

거센 바닷바람과 진흙땅이라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원인이 아닐까 바라보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비가 내리면 그나마 죽어가는 나무들이 힘을 충전하는 것이 아닐까 쓰러져 있어도 살고 싶을 테니까 그 마음이 느껴져서 안타깝다 이곳 숲에서 비는 쓰러진 나무들의 생명충전소 같은 큰 일을 하고 있다 비바람에 툭툭 쓰러진 나무들이 언젠가는 일어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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