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 퇴근길 더디 오는 버스 어둡고 긴 거리
희고 둥근 한 그릇 밥을 생각한다
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위장을 탱탱하게 펴줄 밥
꾸룩꾸룩 소리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려주고
깨끗해진 머릿속에 단정하게 들어오는
하얀 사기 그릇 하얀 김 하얀 밥
머리 가득 밥 생각 마음 가득 밥 생각
밥 생각으로 점점 배불러지는 밥 생각
한 그릇 밥처럼 환해지고 동그래지는 얼굴
그러나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해지면
다시 난폭하게 밀려들어올 오만가지 잡생각
머릿속이 뚱뚱해지고 지저분해지면
멀리 아주 멀리 사라져버릴 밥 생각
-김기택 밥생각
A 아들러는 개인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호 협력하는 용기를 발달시켜 격려로 긍정적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모순이 가득한 삶에 직면할 경우 자신의 내면과 외부환경 등을 조화롭게 협력하는 과정에서 용기 갖고 이를 통해 자신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인식하고 마음에 넉넉하게 삶의 여유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고통을 이해하려면 고통의 근원을 찾아 이해하는 편이 가장 빠르게 고통을 제거하는 방책이 된다 또한 고통을 피하기보다는 수용하고 표현하면 오히려 심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이 변화에는 인지적 변화가 수반된다 즉 이는 머릿속에 남아있는 과거의 기억들이 언어화되는 것을 말한다
시의 화자는 배가 몹시 고프다 하지만 조금 뒤 자신의 배를 채워줄 밥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퇴근하는 길이다 힘든 생활이지만 그 삶이 의미가 있다고 믿으며 부정적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 요소를 찾는 화자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려 노력한다 따라서 생각만으로도 배가 불러지는 밥은 화자에게 주어진 시련을 견디게 만드는 힘이 된다
다급한 불을 끈 후처럼 허기진 배로 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마음은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는 밥을 먹는 행위나 과정 속에서 사회 자연 인간 타 생명체 등과 관계를 맺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리고 세상의 질서를 생각하고 판단하며 현실적인 의미와 조건을 통찰하는 능력을 기른다
시에서 화자는 ‘오만가지 잡생각’을 품는다 이는 자기중심적이라기보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테두리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배가 고플 때는 단순히 배를 불리는 밥을 생각하지만 배가 부른 후 화자의 머릿속에는 온갖 부정적 생각이 자리 잡는다
이러한 화자가 퇴근길에서 처음 떠올린 밥은 단지 고픈 배를 채워줄 뿐이다 처음에는 단지 물질로 존재하던 밥은 화자의 상념을 거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만들어 낸 환상의 밥이 되고 화자는 그 밥을 응시하는 과정에서 몰입되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밥상 위의 밥을 생각하게 된다
이미 생각 속에서 그릇 가득한 밥은 비록 화자의 눈앞에는 없고 여전히 화자의 배는 고픈 상황이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화자는 의연하면서도 밥의 의미를 터득한 일관된 행동을 취한다 이 밥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화자는 밥을 먹은 후에 잡다한 생각이 밀려들 상황까지 예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보다 생각이 앞서 가면서 진정한 밥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자기 존재를 되짚어보는 계기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