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화 밥2

by 김지숙 작가의 집


먹어서

먹어버리고 싶어서

칵칵 물어 씹어서 삼켜도

나는 대꾸를 않는다

싫어서

손으로 쑥

밀어내버리면

꿔다 놓은 보리자루마냥

그런 채로 그러고 있다

단지 밥이기에 나는

먹히는 일만 한다

단지 밥이기에 나는

당신이 버리면

썩는 일만 한다

영원히 늘

먹히는 밥

심심한 밥

-김규화 밥2



우리는 배신 이별 사고 재해 울화 원망 한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 결과 마음에 병이 들기도 하고 그 감정에 사로 잡혀 오랜 시간 고통 받으며 육체적 병을 얻고 나락의 삶 속에서 시달리기도 한다 이 부정적 감정은 쉽게 해소되지 않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그 감정을 완전히 털어내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그 감정을 일으키게 된 원인을 용서하게 된다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면 용서하기가 어렵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점이 병이 깊어 장애가 되기도 한다 또 상처를 준 사람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다시 그러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어떤 피치 못할 상황에 놓여 자신을 괴롭힌 사람과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용서한다고 믿는 것도 진정한 용서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다치게 한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을 눈감아 주는 것 또한 진정한 용서는 아니다 모욕을 받으면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참된 용서가 아니며 용서는 망각과 동일시되지 못한다(Fred Luskin 2014)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존재의 이유에 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에 의미가 있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코 존엄성과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상황이 나빠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면적 선택이 중요하다

밥은 굶주리거나 배가 고파서 주로 먹지만 기존의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혹은 관계를 확인하려고도 밥을 먹는다 또한 육신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도 음식을 섭취한다 시에서 밥은 씹으면 씹히고 밀면 밀리고 버리면 썩는 수동적이다

따라서 화자가 언급하는 밥은 흔히 먹는 밥의 의미를 뜻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쁘고 잔혹한 자의 자기 확인에 대한 탐욕의 수단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음식을 즐기고 탐하거나 쾌락의 차원에서 즐기는 이 모든 비참한 삶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겨내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점은 어떤 의미에서든 가치가 있다

인간은 삶의 의미와 대면하는 과정에서 주체적 의지로 자기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며 미래로 나아간다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화자는 극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내면화로 치닫는다 자신이 할 일은 상대에게 군말 없이 먹히는 일 밖에 없는 힘없어 겪는 고뇌를 이겨낸 화자는 자신을 객관화하여 상대에게 ‘늘 먹히는 밥’으로 인지한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러한 상황에서 초월하게 되고 이런 자신을 화자는 ‘심심한 밥’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상대를 용서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러스킨이 말하는 용서란 순전히 자신을 위한 행동이며 이는 자신에게 상처 입힌 상대와 화해하거나 그들의 행동을 묵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스스로 평안을 찾고 일어난 일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고 이 일에 대한 자신의 선택과 결과에 대해 자각하여야 한다 그리고 다친 마음에 집중하지 말고 그 에너지를 긍정적인 인생 목표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점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없다 따라서 누구나 알게 모르게 잘못을 저지르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더구나 선한 인간일수록 자신에게 한 잘못에 초점을 두고 우울해 하고 한을 쌓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순환의 과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가 자신의 아픔을 덜 느끼게 하는 방법으로 주어진 고통들을 자신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 새롭게 재해석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신의 행위를 책임지고 자신이 기분 좋은 상황을 선택하고 자신을 피해자가 아닌 영웅으로 만들어가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용서란 과거를 망가뜨렸을지언정 오늘과 미래는 결코 파괴해서는 안 되는 생각에서 내린 자기 결단이다 용서란 망각이 아니다 왜냐하면 망각이란 마음 한 켠에 원망을 그대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기억하지 않는 동안 원망하는 마음을 묻어두었기 때문이다 이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부정적으로 되살아나기 쉽다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망각 보다는 오히려 기억을 통해서 고통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시의 화자는 더 이상 자신이 먹히는 상황이 아니라 그러한 고통스러운 순환의 고리에서 일탈한다

따라서 이러한 시련의 순간들을 통해서 화자는 자신의 내면을 한층 더 성장시키고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한편 자기 초월과 같은 방식을 택하면서 절박한 경험에서조차도 감정의 일탈로 평화로운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에 이른다 자신이 받았던 상처에 대해 자신이 아프지 않는 방향으로 새로운 해석을 내린 경우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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