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실 마을, 기와분
오랜 벗이 보내 준 콩란. 푸른 콩 구워 먹던 어린 시절도 함께 보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작불에 새까맣게 그슬린 그날의 콩처럼 콩란은 검게 녹아 있었다. 다시 심은 바람꽃. 변산 앞바다 바위틈에 숨어 피던 꽃. 일주일이 지나자 다 말라 버렸다. 마른 꽃잎들이 속삭인다.
“내 살던 곳이 아닌데 바람도 없이 물만 먹고살라고?”
까맣게 탄 가슴 열어 보인다.
그래! 넌 바람꽃이지. 금당실 마을 안자락 담장 높은 집 마당에 놓인 기와분 잿빛 우정처럼 봄 햇살이 따갑다. 돌담길 따라 부는 그 바람이 텅 빈 가슴을 툭 툭 친다.
오래전에, 도시에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시골살이를 택한 친구에게서 기왓장에 심은 세 종류의 야생초를 받은 적이 있다 딴에는 지극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날이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실망감을 느꼈다
하나하나 죽을 때마다 미안했다 괜히 잘 키우지도 못하면서 귀한 식물을 날름 받아와서는 죽이고 마는 어이없음. 식물도 제 살던 환경에 맞춰줘야 하는데 도무지 다른 환경에서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귀한 것일수록 너무 마음과 힘을 다해 키우느라 부담돼서 잘 자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마음이 되어보았다 그래서 왜 살아내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나친 관심이 불러낸 참사였다 텅 빈 분을 보면서 마음이 좀 그랬다 그래서 비슷한 식물을 사다가 몇 번을 심었다 여전히 잘 살아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와분은 물이 다 흘러내리기 때문에 멋이 있어 보이긴 해도 흙도 소량에다 그 흙마저 물을 품지 못하고 다 흘러나가니 자연 말라 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와송이나 다육 종류는 생존이 가능하지만 다른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기에는 노련한 식물 집사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다육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기와분에 심을 식물을 찾아내는 일은 제법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채송화 와송 꽃잔디 등 키가 작고 생명력이 좋은 품종으로 꽤 여러 번 바꾼 뒤에 비로소 기와분에 식물들이 안착하여 잘 자라는 식물을 찾아냈다
이 시는 친구에게서 받은 기와분에 심겨 잠시 함께 살다가 나의 무능으로 내가 떠나보낸 이런저런 식물에 대한 미안함을 담은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