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간 밤에 손님처럼 다녀간 비
새들은 둥지 속에서 흠뻑 젖었는지
둥지를 버리고
오래된 나무 꼭대기에 옹기종기 모여
젖은 마음을 말리는 중이다
가랑비처럼 다녀간 사람
우산을 잊고 만나다 보니
어느새 촉촉이 젖어들고
온몸이 뜨거워져서
대책 없이 식히는 중이다
여름이라 그런지 비가 잦다 지난 낮의 뜨거운 열기를 밤새 내린 비가 천천히 차갑게 식히고 나무들도 깔끔한 자태로 서 있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동안은 흐르는 시간도 비를 맞는다 비 내린 후의 풍경을 돌아보면 지난 시간조차도 깔끔하게 씻긴 듯하여 마음이 푸르다
비에 젖은 잎잎마다 물방울을 떨구고 모인 물든 땅 위를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가지런히 비가 정리한 창밖 풍경에서 반가운 마음이 먼저 다가선다 비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하루종일 내리는 비보다는 밤새 내리고 그친 비를 더 좋아한다
봄비는 봄비대로 살아나는 생명체들의 숨길을 열고 여름비는 쉴 새 없이 살아있는 것들의 키를 키운다 직선으로 꽂힌 비들이나 부드럽게 내려앉는 비들이 한 일들을 생각하면 대단하다 삼나무의 키를 저렇게 키우고 잣나무 열매를 튼실하게 살찌우고 목메던 그리움의 갈증도 단박에 해소하는 능력자인 비
시간의 한편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여름비는 사라져서는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풀잎들이 젖지만 숲을 돌며 키를 키우고 살을 찌우는 그리움은 젖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