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아 밥이 있는 수채화

by 김지숙 작가의 집

1

얘야 그만 놀고 밥먹어야지

보라색 연기가 노을을 밀어

산아래 동네는 우산처럼 오물아 들고

흙 묻어 놀던 애들 어스름에 잠겨서

구수한 내 피어나는 구들장에 스몄다

국말아 밥을 먹고 숭늉을 마시고

내일 아침 다시 밥을 먹을 때까지

아무 소리 없이 잦아들었다

2

석유를 채운 호야 등불이

저렇게 춤사위를 피워 올리는 동안

콧구멍이 까맣게 엎드린 아이는

노곤한 배를 깔고 잠이 들었다.

팔랑개비처럼 뛰놀다가 지쳤을거다

빈속에 먹은 밥이 독했을거다

눌러서 고봉으로 취했을 거다

3. 교실 밖에는 어미 아비가

늦잠이야 끼니 거른 새끼 때문에

밥을 못먹여 안달이었다

마른 버짐 허옇게 심난한 어미를

땡볕에 쌩하니 눈이 깊은 아비를

안먹어 싫어!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

교실 밖엔 목을 빼는 어미 아비가

교실 안엔 창피하다 투정하는 자식이

날마다 으레 한 둘씩은 있었다.

날마다 한 둘씩은 항복하고 쓰러진다.

-이향아 밥이 있는 수채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쌀은 충북 청원에서 발견된 소로리 볍씨이다 이는 15000년 전 볍씨로 야생종과 재배종의 중간 형태인 순화종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최초로 재배된 벼는 ‘가와지 볍씨’로 약 5천 20년전 것으로 자포니카종(Oryza sativa subsp.japonica)이다. 대부분의 야생벼는 익으면 자연스레 탈립 현상이 나타나지만 이와 달리 재배벼는 익어도 떨어지지 않아 손수 수확해야 한다. 이 재배 벼의 흔적은 빗살무늬토기 속에서 가루 형태로 발견되었다. 이처럼 밥은 오랜 세월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했으며 밥을 먹는 행위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삶을 살아가는 방편이 되었다. 인간이 생존하려면 지속적인 음식 섭취는 필요불가결한 행위이다 우리에게 쌀밥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새롭게 형성하는 매개물로 발전되어 왔다.

가족은 집단 구성원이 갖는 동일시나 전이 등을 갖는다. 가족을 단단하게 묶는 것은 시에서는 아이들의 배를 채우려는 부모의 모습이 나타난다. 시에서 밥은 생명을 영위하는 수단이다. 그렇다고 밥은 가난한 삶 속에서 가난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자식의 배를 불리려고 어버이가 애를 쓰는 자식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는 의미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밥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 생명의 주인이자 자식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는 매개물이 된다. 자신들의 얼굴은 영양부족으로 마른버짐이 피어도 자식을 향한 사랑을 밥을 먹이겠다는 일관된 마음으로 애를 쓰는 어버이 모습이 나타난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자기를 필요로 하는 자식이 있다는 자기가치라는 긍정적 의식이 나타난다. 즉 어떤 어려움에 맞닥뜨리더라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참고 이겨내려는 의식이 이에 해당된다. 또 부부는 애착 체계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다.(J.Bowly) 즉,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적응한다. 따라서 시의 부모는 자녀를 향한 애착 관계가 유사한 상황으로 드러나며 자녀로 하여 삶의 의욕이 고양된다. 어렵고 힘든 삶이지만 자녀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이때의 밥은 이러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매개가 된다. 어떤 장소에서 음식을 먹어보면 그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가능하다. 그 음식은 그 곳의 특성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에는 자녀와 자녀를 생각하는 부모의 심리와 유사하게 편승된 밥의 의미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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