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오 밥 먹자

by 김지숙 작가의 집

밥 먹자

이 방에 대고 저 방에 대고

아내가 소리치니

바깥에 어스름이 내렸다

밥 먹자

어머니도 그랬다

밥 먹자, 모든 하루는 끝났지만

밥 먹자, 모든 하루가 시작되었다

밥상에 올릴 배추 무 고추

정구지

남새밭에서 온종일 앉은 걸음으로 풀매고 들어와서

마당에 대고 뒤란에 대고

저녁밥 먹자

어머니가 소리치니

닭들이 횃대로 올라가고

감나무가 그늘을 끌어들였고

아침밥 먹자

어머니가 소리치니

볕이 처마 아래로 들어오고

연기가 굴뚝을 떠났다

숟가락질하다가 이따금 곁눈질하면

아내가 되어 있는 어머니를

어머니가 되어 있는 아내를

비로소 보게 되는 시간

아들딸이 밥투정을 하고

내가 반찬투정을 해도

아내는 말없이 매매 씹어 먹으니

애늙은 남편이 어린 자식이 되고

어린 자식이 애늙은 남편이 되도록

집안으로 어스름이 스며들었다.

-하종오, 밥 먹자



대부분의 인간은 어디엔가 소속되려는 기본적 욕구가 있다. 이 소속감의 욕구는 근대 사회에서나 과거 전통적 사회에서 역시 대인 관계 속에서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현대인에게는 소속감이나 공통체를 위한 노동력의 담합이나 희생 등과 같은 요인들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엔가 소속되고 소속된 단체 속에서 공동의 정체성을 가지려는 욕구는 강하게 유지된다.(Schlachet 2000) 그런데 이 단체가 만들어내는 응집력은 유동적이며 응집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서로 수용하고 지지하며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여 갈등을 포용한다.

또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소속에 대한 욕구가 있으며 이는 자신을 포함한 하나로 묶인 공동체를 갈망하며 그러한 특정 그룹에 속하려는 욕구이며, 때로는 억지로 묶으려는 의지로 나타난다. 이 욕구는 다양한 개인적 심리 성향 등의 이유로 실제로는 잘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다 인간이 공동체가 되기를 갈망하는 이유로는 완벽한 하나가 되기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이 공동체는 도구적 공동체와 정서적 공동체로 분류되며 기본적으로 주체적 입장을 강조한다.(Sandel 1982) 그런데 가정의 경우는 공동 목적을 이루려고 공동으로 행동을 하지만 사회적 관계나 행동이 설정되는 지리적 범위 또는 터전으로 장소의 설정에 대해서는 매우 개연적이 된다.

시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말이자 수십 번은 내밷은 말이 되는 ‘밥 먹자’ 라는 말로 밥에 대한 통일된 생각을 환기시킨다. 화자의 아내 역시 어머니처럼 ‘밥 먹자’고 소리친다. 가족에게 고하는 ‘밥 먹자’는 말은 다들 건강하게 잘 자고 일어났는지를 확인하는 어머니만의 가족 사랑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다른 방법이다. 그리고 공동의 삶과 온전한 생존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오늘날 현대인은 물질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신의 빈곤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가족 공동체는 해체되어간다. 현대인이 핵가족 혹은 일인 가족으로 살아간다. 가사 일을 협동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상호 노력하며 유기적 연대감을 느끼며 살아가는데 현대의 많은 가족들은 더 이상 상호 존중받지 못하고 세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문화적으로 융합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면서 화자는 문득 ‘밥 먹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기억 속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의 밥을 챙기는 모습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와 아내가 지닌 밥이 주는 가족이라는 결속력을 느낀다.

현실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자신에게서 벗어나야 한다.(V.E. Frankl) 자기 문제에서 벗어나 다른 이에게 사랑을 주며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라 한다. 시에서 ‘밥 먹자’라는 말은 가족을 향해 내뱉는 소리이지만 실은 화자 자신을 포함한 가족을 향한 사랑의 실천임을 깨닫는다. 또 가족의 안녕을 추구하는 사랑 어린 어머니의 희생적 삶의 실천이라는 점을 화자는 뒤늦게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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