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식탁은 불후의 명작 한 편이다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식탁 가에는 숨소리 익은 식구들이 있다

식탁에는 식구라는 가장 따뜻한 이름들이 마주 앉는다

아삭아삭 상추잎을 명편 수필처럼 싸 입에 넣으면

하루가 이슬처럼 맑아지는 식탁 가의 시간

살짝 데친 우엉잎은 한 행의 시구다

누가 처음 두근거리며 불렀을

아버지 누나 오빠 아우라는 말들이 밥상 가에 둘러앉는다

식지 않은 된장찌개의 열의는 곁에서 끓는다.

누구든 식구에게는 손으로 편지를 쓴다.

손으로 쓴 편지는 식구를 울게 한다.

기뻐서 우는 마음이 식구의 마음이다

나무의 나이테같이 동그랗게 둘러앉은 얼굴 송이들

수저도 정갈히 놓아두는 식탁 가에서

간장종지도 고추장 접시도 악기가 되는 시간이

떨기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직도 춥다면 마음이여

놋숟갈로 아욱국을 떠 먹으렴

이 평범한 한 끼 식탁이 식구의 하루를 밝힐 때

밥상은 불후의 명편

식탁은 불멸의 명작 한 편이다

-이기철 식탁은 불후의 명작 한 편이다



식구란 동일한 장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을 말한다. 밥과 더불어 관계를 형성하고 정을 나누는 사람들로 인격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친밀도가 높으며 서로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보낸다. 따라서 개개인의 특성보다는 전체적 특성을 고려해야만 관계가 오래 유지된다. 따라서 밥은 한 개인이 식구라는 공동체 속에서 일원을 이루며 살아가는 매개가 된다. 밥을 먹는 일은 곧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삶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수단이 된다. 따라서 식구가 먹는 음식은 그 가족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한편, 삶에 대한 심리적 특성 또한 읽을 수 있다.

공동체 감각은 연대 유대감 등의 의미를 포함하며 자신과 타인에게 용기를 부여한다.(Alfred W. Adler) 그가 말하는 용기는 세상을 대하는 방법과 관련되며 가족 세상과의 관계형성에 따라 달라진다. 또 배려란 당당한 삶을 펼쳐나가는 원천이 된다. 화자는 식구들과 마주한 식탁과 식탁 위의 음식들이 바로 시라 한다. 이는 ‘조지아의 음식 하나하나가 모두 시’라는 푸시킨의 말이 설득력을 지니는 부분이기도 하다. 화자의 눈에는 식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이 평범한 반찬을 두고 식사하는 시간들이 아름답고 그 음식들이 입속으로 들어가서 식구의 마음을 녹이는 점이 바로 명작과 같다고 느낀다.

우리는 여러 형태의 밥으로 건강을 유지해 왔다. 또 살면서 밥은 가장 가까이 있는 먹을거리가 되어 왔다, 또한 밥은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 문화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음식은 함께 먹을 때 더 맛있다고 느낀다. 공동체 생활로 살아남은 인류에게는 공동의 식사가 있었기에 생존과 번영이 가능했다. 함께 먹고 따뜻한 밥 한 그릇 나누는데서 공동체는 시작되고 유지된다. 음식을 나눠먹는 가족 간의 식사는 사소하지만 평생 반복되며 화합과 치유의 반복 행위이다.

현대인은 상실을 경험하며 살아간다.(Maximilian Carl Emil Weber)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은 부분에서 개인이 자유롭게 결정하는 의지가 사라져간다. 현대인은 자유롭게 의사를 결정하고 실천하는 대신 잘 짜인 구조적 틀 속에서 내쳐지거나 스스로를 끼워 맞추면서 살아간다. 시에서는 유독 따뜻함과 데친 열의 아욱국과 같은 따듯함을 상징하는 어휘들이 나열되어 ‘아직도 춥다면 마음이여’ 애서와 같이 식탁의 따듯함을 대조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마주 앉는다’ ‘둘러앉는다’ ‘둘러앉은’ ‘모여 있다’와 같은 함께 한다는 표현 속에서 평온함을 전달한다. 또한 ‘식구-이름’ ‘상추-수필’ ‘우엉잎-시구’ ‘식구-편지’ ‘밥상-명편’ ‘식탁-명작’과 같이 언어와 식사행위를 관련지은 은유가 나타난다. 한편, 화자의 행동은 이러한 상실의 시대에 대한 반전으로 ‘손으로 편지를 쓴다. 또 정갈하게 놓인 수저’처럼 가족공동체가 추구하는 소중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 식탁은 밥을 차리려 노력하는 손길이 머물기에 이에 감사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장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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