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영완론 「원시기행 1-홍도로 가자」

by 김지숙 작가의 집

깡그리 벗고 섬 하나로 망망대해 몸 던지는 마음

삼십 년을 키웠다

뭍에서 멀어질수록 바다의 호흡은 거칠어

미약한 존재 하나 요동쳤다.

점차 야생의 강처럼 바다로 흘러 들었다

바다의 품으로 함께 솟구치고 함께 침몰하는 법

나를 던지고야 내 안의 바다가 숨 쉬었다.

긴 입맞춤, 바다를 호흡하고서야

그 깊은 두려움도 빠져 나갔다

친밀의 틈새, 포말로 감사인 원시의 섬이 있었다.

「원시기행 1-홍도로 가자」일부




스피노자의 윤리학(3장 명제9 주석)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것이 좋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고 원하고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그 어떤 것을 바라고 원하고 욕망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다고 판단한다 「원시기행 1-홍도로 가자」에서 화자는 홍도가 망망대해 속에서 바다와 함께 침몰하고 바다와 함께 솟구치는 것처럼 바다에 자신을 내던지면 바다가 자기 내면에서 숨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다와의 긴 입맞춤을 통해 자신이 지녔던 두려움도 빠져 나가고 스스로 안도감도 찾고 비로소 화자의 눈앞에 펼쳐진 원시의 섬을 보게 된다 화자가 바다를 좋아하는 것은 화자 자신을 어디엔가 내던지는 행위로 나타난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화자가 입을 맞춘 대상이라는 점에 있다 대상인 바다는 사실 화자의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화자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매개물일 뿐이다 이는 주체의 모방이 매개자의 욕망을 모방하여 이루어지며 매개자에 의해 보이면서 대상을 향한다는 입장이 나타난다

화자가 긴 입맞춤을 하고 싶은 대상은 바로 원시의 섬이다 이 역시 욕망의 주체와 대상 사이에 매개물이 가까이 놓인 3항 구조를 갖게 된다 시의 화자는 원시의 섬과 너무 멀리기에 욕망의 주체가 자신의 욕망을 이룰 수 없고 매개자가 욕망의 대상을 모방하고 그것을 충족함으로써 주체의 욕망은 이루어진다

무엇인가를 버릴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욕망에 대한 열망을 던져버릴 수 있게 되고 그 열망은 점차 줄어들어 소망으로 남는다 인간이 그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 욕망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일수록 더욱 그를 향한 열망은 강하게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 욕망을 쉽게 실현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욕망이 될 수 없다 자신을 내어 던지는 모습은 「원시기행4 고목으로」에서 볼 수 있다 화자는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아라 한다 그렇다 버릴 수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비워져야 만이 다시 채워지는 곳이 바로 자연 생명의 원리이다 화자의 말처럼 인간의 욕망과 열망이란 버려야만 비로소 채워지고 이루어진다

이러한 버림의 미학은 「고요의 풍경」에서도 찾게 된다 화자는 세상의 모든 형상을 거품이라 한다 우리 사는 세상의 모든 허황된 것들을 다 걷어 내버리면 말갛게 남는 풍경 하나면 세상사는 일이 족하다 한다 고요함으로 마무리 지은 그림 같은 세상 속에서 화자는 어느덧 자신마저 지워간다 화자는 자신의 욕망과 열망을 걷어내고 남은 말간 마음을 통해 화자 자신마저도 지워버리는 삶에서의 일탈을 보여준다 시인은 자신이 갖고자 하나 가지지 못한 것을 혹은 되고자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을 시로 꿈꾼다 언어의 그릇에 자신 만의 혼을 담아낸다 좀더 자기답기를 갈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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