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화론
「햇빛과 연애하네」
가을 산의 나무가 햇빛과 연애하네
가을 산에 단풍이 든
가을 산에는 단풍이 미처 안 든
불새의 깃털이 수두룩 꽂혀 있네
햇빛이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와
나무의 몸을 만지고, 반짝반짝
나무는 웃는 눈 노래하는 눈 빛나는 눈을 뜨고
가만히 애무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네
연애하고 있네
몸을 곧추세우고
엄마 젖먹고 잠이 든 아기의 입술처럼
이파리마다 조랑조랑 붙어있네
햇빛은 사랑을 하고 또 하고
나무는 제 몸의 깃털에 불을 붙이고 또 붙이고
붉은 깃털은 더 붉게 노란 깃털은 더 노랗게 화들짝 타는 불새가
불두덩 위에서 불의 알을 낳네
나무가 가을 산을 불사르며 연애하네
「햇빛과 연애하네」
그리스 신화에서 에로스는 포로스와 페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가장 젊은 신과 태초의 카오스 상태를 정돈하던 힘 있는 가장 늙은 신의 두 종류이다 느닷없이 꿈틀대는 욕망을 인격화한 신이 된다 에로스의 본질은 육체에 있다기 보다는 심리적 이성애에 있는 즉 육체적 정신적 사랑을 통틀어 가리킨다 한편 플라톤에 따르면 사랑은 영혼이 승천하는 데 필요한 원동력이다 화자는 자연 경관을 보고 가슴이 일렁인다 자연이 변화하는 순간을 읽어낸다 우주가 순환하는 구조 속에 놓인 자연이 화자의 심정과 결합되어 일어나는 반응이다 불새 불두덩이 불의 알 불사르며와 같은 불자로 이어지는 말놀이 기법으로 불 붉 붙 등으로 이어지는 불에 몰입하며 환상성에 진입한다 자연 속에서 생명 현상의 시비와 섭리를 단적으로 드러내며 자연과 자연이 서로에게 솔직하게 생명의 신비감을 발산하는 상생적 혈연적 유기성을 자아낸다
이 사랑의 관계는 화자의 눈앞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지며 현재의 순간 나무와 햇빛에 서로에게 몰입하여 서로의 존재감을 주고받는 상호의존적 의미가 부각되고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 마음은 자연과 인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어 생명공동체를 생각하고 사랑의 의미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 간의 경계가 흐려진다 가을 산의 나무와 햇빛은 인간의 연애장면처럼 자연스럽게 사랑을 드러낸다 사람만이 에로스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포착한다 그 사랑은 햇빛이 유독 나무만을 편애하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보면 소유적 사랑 낭만적 사랑 유희적 사랑이 나타난다 하늘로 승천하려는 듯 나무와 햇빛이 사랑하는 장면으로 인간의 에로스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신선함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