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자연의 브리콜라주
시집『햇빛과 연애하네』

김규화론

by 김지숙 작가의 집

도산기

소박한 자연의 브리콜라주 시집『햇빛과 연애하네』

「녹음기 풀어놓아」



북한산 계곡의 너럭바위 한 모퉁이를

허락받고 앉았더니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앞인지 뒤인지 위인지 아래인지 가까운지 먼지

두런두런 말소리 들리더라

눈엽 촉촉한 나뭇가지 사이로도

땅까지 내려온 멍석같은 하늘이

입다물게 하더라

소리만 숨어있더라


여름 가을의 무성했던 말

산메아리가 녹음하고

겨울에 내린 눈이 녹음을 녹음했다가

녹여내더라, 녹음기 풀어놓더라

집채같은 바위가 내려보는 아래서

부부 등산객들도 이불 속에서보다 더 풀리어

과일을 깎아주고 받더라

얼굴 빠끔히 내민 진달래 몇송이 바라보고

산객들은 서로 웃더라



「도산기」에서 퇴계가 말하길 산수자연을 대하면 가슴은 일렁이고 눈길 닿는 흥취를 견디지 못하였다고 말한다(전서1시 우음이절) 이는 자연의 경치를 보고 감흥이 일어난 화자의 정서와 유사하게 여겨진다 시에 등장하는 인물 간의 사랑은 어떤 종류인지 불분명하나 이불 속보다 더 풀린 상태란 열정과 욕망이 아울러 나타나는 사랑이자 현재 진행형이며 서로의 마음속이 훤히 다 보이는 사랑이다 쾌락을 중시 여기는 낭만과 유희 상태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소유적 사랑도 나타난다 (Lee) 화자가 자연을 사랑하는 부분은 녹음 녹여 풀리다로 유사 발음과 유사 의미의 반복적 표현으로 계절 구분 없이 녹여내고 풀어가며 사랑의 강도를 높인다 한순간의 정지 화면 속에서 사랑의 완성하려는 표현이다

진달래를 바라보는 등산객을 겹쳐지는 장면 가운데 자연과 인간관계는 불가분의 상황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너럭바위에 허락을 받고 앉은 화자의 귀에는 비로소 이런 저런 말소리가 들리고 그 말들은 자연 속에 숨어 녹음하고 풀어내며 되풀이한다는 자연과 인간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가지 사이에 내려 온 멍석 같은 하늘 집채만한 바위 아래의 등산객은 자연으로 자리 잡는다 그곳은 자연과 자연이 남자와 여자가 사랑의 눈길과 마음을 나누는 곳이 되고 상대에 대해 감각적으로 열린 감정을 표출하는 산 속이라는 자연 공간이다 이 감정의 확산은 평온함을 기저에 둔다

자연은 얼굴 빠금히 내민 진달래로 대변되며 이는 마치 인간의 일들이 궁금한 모양새이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인간이 잘 지내는 점을 볼 때 자연 안에서는 자연이나 인간이 사랑이라는 공통된 정서를 지향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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