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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진

낙동강 나루들

by 김지숙 작가의 집

가야진



노을 고운 둔치 벚꽃마저 고붓하다

수신제 올리고 황룡청룡 용소제 올리는

가야진사 앞에 두고 바삐 강을 건너는

뱃사공 손길 쓰렁쓰렁

느린 물길 따라 흘려듣는 강동한

전설 뒤로 하고 농악놀이 풍물소리 왁자한 가야진사


물금나루를 뒤로 하고 양산으로 향하다보면 원동면 용당리가 나온다 원동마을과 달리 강쪽으로 향하는 좁은 굴다리처럼 생긴 길을 지나면 가야진사伽倻津祠가 나온다 가야진은 옥지연玉池淵이라고 한다 세종조에 황룡이 물속에서 나타나 가물 때 소원을 빌면 효험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용당리 앞을 흐르는 낙동강하루의 용산 아래 용소가 있어 황룡 한마리와 청룡 두마리가 살고 있었고 이들을 위로하는 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가야진사는 원동역에서 서북방향으로 2키로 지점에 있다『삼국사기』 권32 제사祭祀 조역간 양산읍지초』(양산문화원 1990)에 보면 대 중 소사小祀 중 중사에 속하는 사독四瀆중 하나로 네 방위를 따라 정해서 해마다 제사를 지내던 네 강의 하나이다 나라에서 연 3회 이상 강을 다스리는 독신瀆神에게 제를 지내던 사당이다 가야진 용신제는 국가적인 시제와 관민들의 기우제를 합한 놀이형식의 제를 지내는 곳이다

특이한 점은 우순풍조를 용신에게 비는 제사를 지낼 때에는 반드시 메 탕 나물 등의 제수를 3그릇에 놀고 지내는데 경비를 가야진사에 속한 위전位田 600평에서 소츨된 것으로 층당한다 신라때부터 이어져 오던 가야용신제는 일제강점기에 사당이 헐리고 용신제를 금지당하면서 주민들은 천태산 비석골에 사당을 모시고 밤중에 지게를 지고 제수를 운반하여 제사를 지내곤 했다 광복이후 현위치로 이동하였다 원래 사당이 있던자리는 신라가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배를 대고 왕래하던 곳으로 옥지주玉池洲로 불리었

실제로 가야진사에 들어서면 그러한 위전은 어디인지 알길이 없다 잘 다듬어지고 관리된 잔디밭이 여늬수변 공원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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