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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금나루

낙동강 나루들

by 김지숙 작가의 집


물금나루



‘서로 금하지 말자’

가야와 신라가 서로 오고 간 勿古味

물 피해 입어‘물을 금한다’는 물금水禁


맷맷한 물반대기 강 맞은 편

마을 사람들과 아릿하게 살아 가는 황산진

대동 월당 오가며 야리 물고미 하웃들 사람들

한자리에 모이던 장터 엿판 흥겹더니

지금은 한갓져 금할 것도 말 것도 없는 물금나루



큰강이 흐르고 수로와 육로가 함께 교차하며 물자와 사람을 운송한다 길은 땅이 연속적인 곳에서 수로는 물이 연속된 곳에서 생긴다 나루는 배를 이용하여 수송운송의 기능을 하던 곳이다 물금나루터는 이러한 옛기능은 잃어버렷지만 흔적은 만아 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 양상이 서로 마주보고 생겨난 나루 들 중 하나인 물금나루는 물금취수장 앞 선박계류장이 있고 약간 아래쪽으로 보면 어민들이 이용하는 선착장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김해의 고암나루이며 물금나루를 오가던 곳이다

그리고 이 주변은 대동 월촌리와 이어진다 즉 물금 증산에 있는 나루는 물금나루이고 김해 대동 원촌리에 있는 나루는 고암나루이다 고암나루에서 바라보면 물금 증산이 지척에 바로 보인다

물금이라는 말은 홍수피해가 잦다보니 수금水禁→물금勿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구언이 생기고 부터는 이 의미는 무색하다 도다른 의미로 물금勿禁이란 신라와 가야의 교역이 활발하여 이 일대에 전쟁이 잦았고 그래서 이곳을 범하지 말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물금나루 즉 황산진黃山津은 기록에 따르면 『삼국사기』의 석탈해 이사금조(서기 77년)에 신라가 황산진黃山津을 설치 운영했다 낙동강을 황산하黃山河라 한다

낙동강 수로의 거점지역이라 육로와 수로가 함께 발달한 물금은 신라시대에는 철기생산과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교통통신숙박의 거점이되던 역참이 있어 국가의 명령이나 공문서를 전달하고 외국사신을 대접하던 역사적 공간이 바로 물금나루 주변이다 지금은 물금 신도시가 생기면서 쌍전벽해의 전경을 보게 된다

황산강을 따라 나 있는 작은 길을 달리다 보면 별다른 생각없이 지나치기 일쑤이지만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을 자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 머물러 강을 바라보게 된다 조금덜러진 곳이긴 하지만 강 주변은 수변공원을 조성하여 이미 어디가 어디인지 말하지 않으면 별다른 차이를 모를 만큼 알길이 없고 다만 강 건너를 바라보면서 참 가까운데 이렇게 멀길을 돌아서 와야 하는구나 싶을 만큼 지척에 양산을 두고도 물길이 아니 육로를 이용하자면 멀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람들도 멀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친구가 사는 여차리에 가자면 물금나루 건너편 자주 고암나루를 지나치게 되고 그럴 때마다 물금 선착장 주변에 차를 대고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세월이 유수라서인지 변화무쌍한 장소 앞에서 또 다른 변화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물금나루는 이제 흔적만 겨우 남아 있다 나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열리는 물금 장은 5일 10일 열린다 주민센터 앞에 치를 대고 장구경을 나섰다 규모가 워낙에 작아서 별달리 볼거리는 없지만 꽃시장이 열리는 봄이면 그래도 꽤나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거래되기도 한다 옛물금을 생각하면서 물금나루를 찾는다면 아마도 감성은 불러내기 힘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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