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서시」유치환 「바위」

자연지향성 시의 생명

by 김지숙 작가의 집

자연지향성 시의 생명







서구의 과학혁명 계몽사상 산업혁명 등에 기인된 물질중심주의는 생명의 가치를 급속도로 상실시켰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인간은 진화의 정점에 있으므로 인간을 포함한 타 생명체까지 고려하고 책임은 막중할 수밖에 없다

모든 생명체들이 상호공존 할 수 있는 바람직한 생명관을 지니게 되는 시적 과정을 찾기 위해 생명의 의지 생명의 파괴 생명의 순환 생명 공동체 등을 자연지향성과 관련지어 점검하고자 한다

자연지향성이란 시가 자연에 대해 인식하는 태도를 말한다. 자연형상 그 자체의 묘사로서 시속에 존재한다기보다는 시인의 관념과 정서를 표현한다 물질문명과 산업화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무엇보다도 자연복원에 관심을 가진다. 생명질서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이에 포함하며 근본적으로는 자연과의 조화를 인식하려는 시적 특성을 지닌다 생명이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근본적인 속성을 뜻한다 모든 생물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인 생명은 경우에 따라서는 생물과 그 활동을 통틀어 일컫기도 한다 (임동옥1999)

일제 치하의 자연개발은 강점과 수탈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무지와 야만의 땅을 문명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우리 국토와 국민은 피폐되었으며 상실감 비탄 울분 위기감 등이 온 국민의 감정을 지배하다시피 하였다

시문학파와 주지파에 대한 반대성향을 띤 [시인부락] 출신의 유치환은 인간의 생명 의지를 추구한 바 있다 특히 시대적 고통을 강인한 생명력으로 극복하려 했던 그는 「깃발」 「생명의 서」 「바위」『생리』(1937) 등에서 허무의식을 생명의지로 극복하려 했다 함형수는 연작시 「소년행」을 중심으로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회상을 통해 생명의지를 드러내는 한편 서정주는 『화사집』(1941)에서 원초적 생명력을 보여준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린(愛隣)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치환 「바위」


나의 가는 곳

어디나 백일(白日)이 없슬소냐.

머언 미개(未開)ㅅ 적 유풍(遺風)을 그대로

성신(星辰)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熱愛)하되

삼가 애련(哀憐)에 빠지지 않음은

그는 치욕(恥辱)임일레라.

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좋은 증오를 예비하였나니.

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瞳孔)에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不義)에 즘생처럼 무찔리기로

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日月)에

또한 무슨 회한(悔恨)인들 남길소냐. -유치환, 「일월」『문장』3호 (1939.4)-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유치환 「생명의 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유치환의 「바위」에서는 안으로 안으로만 자신을 채찍질하여 드디어 자신의 생명조차도 망각하고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될 것이라 결연한 의지를 보인다 현재사실이 아닌 미래를 추정하는 것으로 생명의 근원적 울림에 귀기울인 점으로 볼 수 있다 「일월」에서 화자는 자신의 생명에 속한 것을 생명과 함께 열애하지 못하고, 애련에 빠지지 못함을 치욕으로 여긴다 이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열애와 존중을 표현한 것으로 조화로운 삶으로 나아가려는 생명의지마저 보여준다 「생명의 서」에서는 생에 대하여 원시본연의 자태를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어느 사구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한다 이는 반드시 원시본연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며 이를 이루지 못할 때에는 죽음도 겁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윤동주의 「서시」에서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 가는 생명체들을 사랑하려는 화자를 만날 수 있다 도덕적으로 무장된 지성은 생명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자연의 사소함에 눈을 돌리는 한편, 현실을 살아가는 아픈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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