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장멸치

by 김지숙 작가의 집

기장멸치




멸치 지나는 길에 그물 쳐서

그물코에 걸린 멸치를 그대로 뭍으로 가져와서

대변항에서 털면

그물 밖으로 떨어지는 멸치 이삭 줍듯

바지런한 아낙들의 손에서

봄이면 액젓으로

가을에는 육젓으로

때로는 멸치회로 찌개로

말린 멸치로 가난한 살림살이 보태는

봄가을이 후덕한 대변항 사람들도 부산하다



기장멸치에 대한 기록은 1910년 발행된 『한국 수산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92년 일본인들이 이일에 종사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일대의 대변항에서 멸치를 잡는 법은 그물을 사용하는 방식에 다라서 고정자망과 유자망으로 나뉘는데 고정자망은 그물을 고정시켜 지나가는 멸치를 잡는 방식이고 유자망은 두척의 배를 이용하여 멸치 이동로에 그물을 쳐 그물코에 걸리게 잡는 방식이다 멸치는 주로 3월-6월에 잡은 멸치는 액젖으로 10월- 설날까지 잡은 멸치는 살이 올라 육젖으로 사용한다 대체로 잡은 멸치는 회 찌개 튀김 액젖 등으로 소비된다 멸치를 잡는 철에 대변항으로 나가보면 멸치를 터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리고 이즈음이면 열차를 타고 멸치를 팔러 다니는 아낙들이 머리에 이고 혹은 리어카를 끌고는 기차역 곳곳에 내려서는 '멸치 사소'라는 소리를 하며 온 동네를 떠들석하게 돌아다니곤 했던 기억이다

해마다 멸치액젖을 담던 엄마의 손길도 분주해지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하다 장독간의 항아리들을 잘 씻어 물기를 빼고 소금을 가마로 사서는 해마다 멸치를 팔러 오던 단골을 기다리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해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사서 멸치를 담았는데 맛이 다르다면서 오지 않은 멸치 장수를 염려하곤 했다

멸치 액젖을 담는 날이면 굵고 싱싱한 멸치를 골라 찌개를 끓였다 양념은 매운탕 양념이었다 멸치가 작고 얇다보니 자연 양념이 잘 스며 들어 멸치를 잘 찢어 흰 밥위에 얹어 먹으면 적당히 간이 밴 맛이 입맛을 곧우곤 했다 또 엄마는 응용력이 좋아 멸치살을 아주 곱게 다져서 파 고추 양파 깨소금 계란 등도 곱게 다져 넣어 동그랑땡을 부치곤 했는데 이게 아이들에겐 인기가 좋았다 회를 즐기던 식구들이라 멸치회는 가끔씩 먹었는데 초장에 된장과 각종 양념과 상추 등을 섞어 버무려 먹었다

그렇다고 어린 입맛에는 멸치 동그랑땡외에는 유별나게 맛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액젖을 담는 날은 김장을 담는 날처럼 멸치와 관련된 반찬들이 식탁에 올라오는 특별한 반찬들 덕에 멸치 앶젖 담는 날이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곤 했다

최근에는 기장 대변항에 가서 지인들이랑 멸치회를 먹으러 갔었다 아마도 멸치를 잡는 시기였던지 아닌지 별 다른 생각없이 갔는데 텅빈 가게들의 품새를 보아 제철이 아니었나 보다 멸치회는 예전의 맛과는 좀다른 느낌이었다 그때 그 맛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주 전투적으로 젓가락을 움직였는데 맛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멸치찌개도 마찬가지였다 냉동실에서 급조한 듯한 멸치를 아무리 잘 끓여낸다고 해도 어지 막 잡은 멸치와 맛을 미교할 수 있겠는가 결국 그 뒤로는 멸치회나 멸치찌개는 먹으러 가지 않았다 예전의 추억 속 멸치에 대한 맛의 기억을 덮어버린 점이 아쉬웠다

결국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것처럼 음식도 사람도 가장 빛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빛나는 때로 평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제철 멸치처럼 빛나는 청춘처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낙동물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