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지향성 시의 생명
결론
공생공존의 세계를 지향하는 자연은 이로 인해 더욱 아름답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경이의 세계를 꿈꾸기도 하고 신비 평화 영원의 표상이 되며 냉혹한 투쟁의 장이 되는 자연은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공유하면서 살아가야 할 삶의 공동장소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까지 현대시의 자연지향성과 생명성에 대하여 알아 본 결과 강인한 삶의 의지를 보다 적절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불변하는 자연을 매개로 삼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치환 윤동주 함형수 등의 시에 나타나는 바위 遠雷 비바람 砂丘 日月 장마 황야 星辰 등은 영구히 사라지지 않을, 그렇지만 순간순간 조금씩 변하는 자연물을 통해 강한 생명력을 드러내는 자연이다
화자도 그들의 모습을 본받아 생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여기서의 대부분의 생명은 단지 인간생명에 대한 것으로 보여줄 뿐이다 경제개발이 되면서 그 이면에 숨겨졌던 자연파괴의 실상들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고 인간의 생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구자연의 생명체를 향해 관심의 폭을 넓히게 된다
이를 보여주는 시가 이형기의 「전천후 산성비」 신경림의 「이제 이 땅은 썩어만 가고」 최승호의 「공장지대」 이승하의 「돌아오지 않는 새를 기다리며」 등이다 이들 시에 나타나는 자연은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온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장소가 되지 못하고 복원의 희망을 잃어버린 채 살아 있는 생명체마저도 감당하지 못하는 죽음의 장소가 되어 있을 뿐이다 인간이 살아 갈 수 없는 파괴된 자연의 실상을 제시함으로써 자연 생명체의 생명보존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파괴된 자연생태계는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가지며 다시 복원되기도 한다 정일근의 「나무 한그루」 정현종의 「나무여-생태시 1」에 드러나는 자연인식은 본연의 자태로 돌아가는데 있어 두려움이 없으며 오히려 이를 달가워 한다 자연의 파괴된 모습이 스스로의 정화능력으로 복원되는 것은 자연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자연의 파괴는 과도할 경우 복원도, 자정능력도 상실하게 된다 과거의 순수했던 자연을 그리워하며 그리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점은 재생 회복으로 표현된다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사이좋게 살아가야 하며, 생명의 영위를 위한 최상의 조건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한 생명공동체 의식은 김광섭의 「산」 이성부의 「벼」 이성선의 「입산」 김지하의 「새봄」 정현종의 「흙냄새」 등에 나타나며 이들의 시에는 크고 작은 생명체가 지구의 자연 속에서 상호일체감을 가지고 교감하는 친밀한 모습을 지닌다 또한 이들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생명공동체의 장으로서 자연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요약하자면, 일제치하의 시들이 주로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강인한 생명의지를 필요로 했다면 해방 이후 오늘의 시들은 인간의 생명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상실되어 가는 그릇된 생명에 관한 가치관들을 바로잡아야 하는 한편, 생명공동체 의식으로 나아가려는 시적 노력을 보인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