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란「회복기 봄의 문턱」

여성시의 언술방식

by 김지숙 작가의 집


대화체

여성시에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대화체는 여성이 언술내용을 상대에게 욕망을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여성시에 표현된 대화체의 언술 속에 문답이 다 들어 있으므로 독자에게 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대화체를 나타내는 여성시들은 자신의 언술이 독자의 가슴 속으로 파고듦은 물론이고 그리고 난 후에도 자신이 부여한 의미를 공유하는 결과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따라서 이러한 대화체는 여성 시인들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타인과 공감하고 교류하고 싶은 내적 열망이나 희망의 또 다른 표현으로 나타나며 강한 친교적 열망을 표출한다


김정란「회복기 봄의 문턱」

어느 날

나는 터널 속으로 떠밀어 넣어졌다

이게 뭐야?

놀랄 틈도 없이 어두움 속에

얼굴을 숨긴 손톱들이 달겨들었다

미안해 난 그저 시키는대로 하는 것뿐이야

주인을 알 수 없는 손톱들이

내 맨살을 할퀴며 말했다

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얼굴들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제발 죽어 줘

내게 불똥이 튀지만 않게 해줘」

하지만 아 있었다 참을성 있는

어떤 다른 손들 그들이 나를

붙들었다 흔들리지 마 어두움은

반드시 지나갈 거야 나는 그걸

믿었다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터널을 빠져나왔다

어두움의 입구에 주저앉아

나는 갈기갈기 찢긴 내 마음속 맨살을

들여다보았다 힘을 내야 해 나는 뚝뚝

피흘리는 내 상처에게 말했다

아주 가까이에서 민들레 꽃씨처럼 가만히

어떤 눈길들이 일어났다 그들이 내

상처 위에 내려앉았다 괜찮아 나을 거야

봄 햇살 몇 줄기 내 찢긴 맨살의 뿌리에

스며들었다 이겨내야 해 나는 조용히 말했다



김정란의 「회복기 봄의 문턱」에서 화자는 대화체 형식으로 자신에게 말한다 대체로 대화체 시에 사용된 여성의 언어들은 친교적이고 관계지향적인 열망이 나타난다 시에서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데 이는 어두운 세계의 실상을 파헤침으로써 독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도가 깔린다

시에서 손톱들은 주체성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며 얼굴을 숨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손톱으로 타인을 할퀴고 폭력을 가함으로써 주체성을 상실한 가해자로 표현된다 질문하고 답하는 두 화자를 설정한다 질문하는 사람은 제삼자이고 답하는 사람은 시적 주체이지만 실상은 스스로의 대답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련된 시적 장치이다

홀로 주고받는 이러한 형태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끈질기게 답변을 요구하는 장치를 설정한다 그의 질문은 독자와 자신을 향해 동시적으로 던져진다 묻고 답하는 형식은 단조로운 독백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상황에서만 의미를 부여받고 있을 뿐이며 시의 설득력 있는 내용 전달을 위해 전략적으로 대화체 언술구조를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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